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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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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ÔNG TIN TÀI LIỆU

Thông tin cơ bản

Tiêu đề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Tác giả 조 항 제, 박 홍 원
Người hướng dẫn PTS. 조 항 제, PTS. 박 홍 원
Trường học 부산대학교
Chuyên ngành 신문방송학
Thể loại 논문
Năm xuất bản 2011
Thành phố 부산
Định dạng
Số trang 31
Dung lượng 384,87 KB

Nội dung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지나온 우리 과거의‘결산’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생각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설계를 하기 위함이다. 이런 역사에는 관점이 필요하다. 관점은 우리가 역사를 연대기적 사건의 연쇄로 기술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계를 좀 더 확연하게 보게 해 준다. ‘정치와 경제’에 주목하는 이 글 의 관점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와 그들 사이의 관계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텔레비전 을 사이에 두고 국가시장시민사회는 다양한 관계를 거듭해왔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초기에는 국가가 하부구조적 힘을 발휘했다. 수상기 보급, 네트워크의 허가 및 확장, 프로그램 수입과 관련된 외환 사용 등 시장의 일부 기능을 제외한 대부 분을 국가가 결정했다.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경쟁이 시작되고부터는 서서히 시장의 자율성과 협상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기왕의 국가와 새로이 형 성된 시장이 나름의 갈등과 절충을 했던 시기였다. 이후에는 다시 국가가 전면에 나 섰다. 허울뿐인 공영제도에서 다른 계기는 사전에 차단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시민사 회의 저항적 정체성은 이 때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졌으나 곧 국가에 뒷받침된 시장이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IMF 경제위기는 이를 가속시켰다. 케이블TV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자유 화∙시장화는 이후의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는 시청자권리를 확립시킨 통합방송법 이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의 정착을 비롯한 구래의 숙제들은 해결을 미룬 채 산적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그동안 문제에 대해 대응했던 방 법, 곧 드러난 것만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미봉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준다.

방송문화연구 2011 제23권 1호 pp.41~71 http://book.kbs.co.kr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 항 제**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 홍 원***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지나온 우리 과거의‘결산’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생각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설계를 하기 위함이다 이런 역사에는 관점이 필요하다 관점은 우리가 역사를 연대기적 사건의 연쇄로 기술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계를 좀 더 확연하게 보게 해 준다.‘정치와 경제’에 주목하는 이 글 의 관점은 국가, 시장, 시민사회와 그들 사이의 관계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텔레비전 을 사이에 두고 국가-시장-시민사회는 다양한 관계를 거듭해왔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초기에는 국가가 하부구조적 힘을 발휘했다 수상기 보급, 네트워크의 허가 및 확장, 프로그램 수입과 관련된 외환 사용 등 시장의 일부 기능을 제외한 대부 분을 국가가 결정했다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경쟁이 시작되고부터는 서서히 시장의 자율성과 협상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기왕의 국가와 새로이 형 성된 시장이 나름의 갈등과 절충을 했던 시기였다 이후에는 다시 국가가 전면에 나 섰다 허울뿐인 공영제도에서 다른 계기는 사전에 차단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시민사 회의 저항적 정체성은 이 때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졌으나 곧 국가에 뒷받침된 시장이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IMF 경제위기는 이를 가속시켰다 케이블TV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자유 화∙시장화는 이후의 분위기를 주도했고 이는 시청자권리를 확립시킨 통합방송법 이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영방송의 정착을 비롯한 구래의 숙제들은 해결을 미룬 채 산적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그동안 문제에 대해 대응했던 방 법, 곧 드러난 것만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미봉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준다 주제어 : 텔레비전, 역사, 국가, 시장, 시민사회, 공영방송 * 이 논문은 부산대학교 자유과제 학술연구비(2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제언과 비판을 아끼지 않으신 세 분의 익명 심사위원에 감사드린다 * * hcho@pusan.ac.kr * * * hwpark33@pusan.ac.kr � 41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목 차 서론 : 문제의 제기 서술의 관점 :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 시기 구분 : 거시적 구분 전개 과정 1) 실험기(1961년 이전) 2) 정착기(1961~1969) 3) 동원적 대중화기(1969~1980) 4) 억압적 공영방송기(1980~1987) 5) 민주화∙자유화기(1987~2000) 6) 경쟁∙시장기(2000~현재) 논의 및 결론 � 42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서론 : 문제의 제기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간햄(Garnham, 2000, pp 17~19)에 따르면 다음의 네 가 지 때문이다 첫째는 역사에서 나오는 증거가, 그것이 비록 최근의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의 과정이 끝났을 때 에야 우리는 비로소 이를 측정하고 기술하고 설명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은 과거 경험의 기 반 위에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제도와 사회적 실천, 관행은 과거에 대한 개 인 또는 집단의 사회적‘기억’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이의 형성과정과 이유를 추적 해봄으로써 이러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잠재력을 얻는다 셋째, 역사는 우 리 자신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근거이다 넷째, 사회이론, 특히 커뮤니케이션 연구 또한 그 자신의 역사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텔레비전의 지난 50년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 글의 목적 역시 간햄의 것과 크게 다르 지 않다 우리는 결국 지나온 우리 과거의‘결산’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생각을 검증하고, 앞으로의 설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결산을 우리가 자주 하는 것 같지 는 않다 우리는 지금 숨 가쁘게 새로운 미디어가 도입되는 일상과 이런 일상이 더욱 가속 될 것 같은 미래에 쫓겨 여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억지로라도 돌아보게 하는‘�주년’의 계기는 반가울 이유가 있다 리쾨르(Ricoeur, 1983)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해‘현재’에는 세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고 쓴 적이 있다 과거에 대한‘기억’으로서의 현재요, 현재에 대한‘주목’으로서의 현재요, 미래에 대한‘기대’로서의 현재이다 현재의 어떤 행위가 기억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 주 목과 기대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과거(역사)는 공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반대로 기억에 의해 행동하면서 그 기억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행동 역시 그 진정성이나 이후의 책임을 확인할 길이 없다 역사에 현재성이 있다는 지적은 이러한 맥 락을 염두에 둔 경구이다 그렇다면 결국 역사에 대한 연구와 현재에 대한 연구는 같이 가 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를 염두에 둘 때, 역사는 관점이 있는 내러티브가 된다 관점은 우리가 역사를 연대기적 사건의 연쇄로 기술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계를 좀 더 확 연하게 보게 해 준다.‘정치와 경제’에 주목하는 이 글이 관점으로 제시하는 것은 국가, 시 장, 시민사회와 그들 사이의 관계이다 정치과 경제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는 국가와 시장만을 � 43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보지 않는 이유는 시민사회가 이들을 강력하게 견제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방송 사이는 방 송의 메시지와 국민(시청자)이라는 불가분의 관계 때문에 특수해지며, 시장과 방송 사이 역 시 소비자의 방송소비라는 행위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국민-소비자는 시 민사회라는 또 다른 영역의 구성원으로 자율과 연대, 합리적 커뮤니케이션 같은 시민사회 의 여러 원리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국민-소비자-시민의 다중성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시민생활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이 글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는 이 글의 관점에 관한 것으로 앞서 언급했던 국가, 시장, 시민사회와 그들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둘째, 이와 밀접하게 관 련이 있으며 역사를 서술하는 기본적인 절차 중의 하나인 시기 구분을 제시한다 시기는 이 글의 성격과 분량을 감안해 거시적 구분에 치중한다 셋째는 이 구분에 맞춰 각 시기의 특 징을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이러한 역사과정에서도 변하지 않는 부분에 주목해 역사연구가 가지는 의의를 제시한다 서술의 관점 :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관계 서론에서도 언급한 대로 방송역사의 서술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시기 구분이나 서술 의 우선순위, 강조점이 반영되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보편적인 것’을 앞세워 선험적으로 정하기보다는 개별 나라 또는 사회의 사정을 반영하는‘특수한 것’을 집약하고 이를 다시 ‘보편적인 것’과 절충하는 과정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방송역사에서 이 특수한 것은 단연 국가이다 좁게는‘유신체제’,‘권위주의체 제’나‘박정희 정권 20년’하고 말할 때의 체제(regime)나 정권으로, 일반적 의미로는 통치 기구로서의 정부나 부문권력으로서의 정치권력으로 바꿔 쓸 수도 있는 이 국가는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면서 한국의 방송을 지금의 모양새로 만든 최고의 변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은 서구와 나머지 세계(특히 제3세계)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는 양쪽 모두에서 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제3세계와도 사뭇 다른 차원을 보인다 이를 단적으로 예증하는 것은‘언론통폐합’이다 국가권력이 나서 민간 소유의 신문∙방송 을 강제적으로 폐지∙통합한 조치인 언론통폐합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1) 1) 필자가 아는 견지에서는 국가가 나서 민간방송의 소유를 바꾸려 한 정책은 1970년 멕시코의 에체베리아 정부의 방송국유화 정책 정도뿐이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방송의 저항(당시 방송사들은 3사 합병으로 자신을 거대화시킴으로써 이에 저항했다) 으로 실패에 그쳤다(Mahan, 1985) � 44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그야말로 초법적 의미의‘통치 행위’2)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한국에서 국가 변인은 정치나 경제사에서도 그렇지만 방송사에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 이다 이와 더불어 시장 역시 국가 못지않게 방송을 움직이는 중요한 기제이다 방송에서 시장 은 한정된 재원(광고) 및 대중의 시간을 놓고 벌어지는 시청률 경쟁을 비롯한‘화폐의 논 리’로, 소유규제∙(재)허가∙M&A∙광고 등에 대한 각종 정책에 영향 받으며 경기 동향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장은 국가와 달리‘외부(개입)적’∙‘사건적’이지 않고, 눈에 보 이지 않게‘내부적’이며‘구조적’이다 1960년대 이래 한국 방송이 끊이지 않는 외압에 시 달리면서도 나름대로의 대중성과 꾸준한 (자본)축적을 유지해 온 배경에는‘비약적 경제 성장’이라는 큰 버팀목이 있었다 물론 한국 방송은 1980년에 도입된‘관리시장’ (controlled market;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적 영업권) 제도로 인해 다른 나라에 비해 시 장 영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경쟁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보고 또한 찾아볼 수 없다 꼭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경쟁의 양상 이 치열한 곳이 한국 사회이고 한국 방송이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국가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의 자율적 활동영역으로서의 시민 사회이다 이러한 시민사회 역시 한국 방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1980년대 중반 에 있었던 KBS 시청료 거부운동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민적 방송거부 운동이다 이러한 시청자운동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는 방송사 내부의 노동조합과 일정한 교감 및 연대를 가지면서 다양한 방송 감시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데, 일반 시민은 일상적으 로 활동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정보력이나 전문성도 낮기 때문에 시청자운동과 노조의 선 도적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러한 시민사회는 두 가지 측면을 공유하는데, 하나는 현실을 분석하는 이론적 도 구라는 점에서‘분석적∙설명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모습으로 이상적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지향해나간다는 점에서‘규범적∙실천적’인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이 중성은 시민사회 이론이 국가(권력 논리)와 경제(화폐 논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규범적 이 상을 제시한다는 목적에 비추어 불가피한 것이다(정태석, 2007) 텔레비전의 역사를 살펴 보는 이 글 역시 한편으로는 텔레비전의 의사결정에 시민사회의 참여가 어느 정도 이루어 졌는지, 이 과정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2) 물론 이는 나중에 다소 정당화된 뉘앙스로 붙여진 것이지만, 바로 그러한 불가역적 행위가 쌓여진 것이 바로‘역사’라는 점에 서 국가는 한국의 방송 역사 서술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받는다 � 45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시민적 참여를 목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양 측면을 공유한다.3) 이러한 국가, 시장, 시민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국가와 시 장 사이에는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해 시장을 창출∙형성하고 민족-국가 문화를 육성∙보호 하는 과정이나 공영방송 같은 공적 제도체를 도입하고, 경쟁구도를 조성해 투자를 도모하 며, 소유나 광고 등에 대한 각종 규제 제도를 확립하는 과정 등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에서 양자는 국가적(또는 민족적) 정체성의 유지가 명분인 정책 메시지의 우선적 소 비, 경쟁을 원활히 하면서 투자를 독려하는 독점의 규제, 준조세적 재원인 (공영방송의) 수 신료의 징수, 상업방송의 수입과 직결되는 광고량∙요금∙방식의 규제 등을 둘러싸고 일정 한 갈등관계에 놓인다.‘국가의 규(통)제’와‘시장의 자유화’는 이런 양자의 갈등을 집약적 으로 표현한 말이지만, 국가가 나서 경제적 발전을 견인했던 제3세계의 경우 국가와 (미성 숙)시장 사이에는 긴밀한 결합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시장과 시민사회는 주로 문화의 질, 문화의 민주화∙다양화와 관련된 부분에서 관계를 맺는다 시장이 광고주 및 다수의 현재적‘욕구’(시청률)에 치중하면서 이를 내부의 시민사 회(노동조합∙전문직주의)의 목소리를 통제하는 데도 적절히 이용한다면, 시민사회는 경제 외적 가치, 예를 들어 문화의 질적 가치나 소수자의 가치를 중시한다 이 점에서 양자 사이 에는 상당한 갈등의 소지가 존재하며, 그 전형적 예가 주변부 소수를 억압하고 문화의 질적 저하를 조장하는‘특권적 시장’과 이에‘대항하는 시민사회’이다 때로 시민사회는 시장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을 경주하기도 한다(소비자운동)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는 주로 정치적 메시지의 성격이나 공공영역의 창출∙유지, 문 화의 질∙다양화와 관련된 정책 등의 이슈들이 제기된다 집권당이나 특권 계급 등에 우호 적인 메시지 생산∙통제구조, 공영방송의 (정치적∙경제적) 거버넌스, 소수자의 정책적 보 호의 필요성 등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는 자주 갈등한다 특히‘권위주의 국가’와‘저항적 시 민사회’는 이 점에서 대표적인 갈등의 축이다 이처럼 민주화, 다원화, 자유화, 내셔널리즘 등의 가치를 두고 삼자는 다양하게 결합∙갈등한다 3) 특히‘사회-책임-공론장-도덕적∙적극적 시민’과‘개인-욕구-시장-이기적∙수동적 소비자’는 각종 정책 대립의 원천이 되는 대조적 이분화이나 사실 이 둘은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분석적인 차원에서는 이 둘 사이가 어떻게 연계 되느냐가 중 요하며(Couldry, Livingstone & Markham, 2007), 때로 위상적 개념으로 쓰일 때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시민∙소비자 사이의 갈등 과 투쟁, 타협과 연대가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장이다 � 46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이론적으로는 하버마스 등의 이른바 삼 분할론에 연원을 두는 이러한 국가-시장-시민사 회4)는 미디어 영역에서도 자주 응용되어 왔는데 (대표적인 예로 Hamelink & Nordenstreng, 2007), 특히 최근에는‘반시민적 경제주의’(신자유주의)(Dahlgren, 2009)를 견제하고 시민 과 민주주의를 복권하려는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들의 지향은 시민사회를 통 해 경제의 미디어 지배를 막고 이를 부추기는 이면의 권력논리도 제어하는 데 있다 이런 삼자 사이의 균형은 주로 미디어 자신, 특히 미디어인의 전문직주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므 로 이런 미디어를 포함시키면 4분할이 되기도 한다.5) 지난 한국의 방송역사는‘국가의 권력논리’∙‘지배의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민주화된 이후에는 미디어∙채널을 풍부화 시킨 테크놀로지의 혁신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야기하면서‘경제주의’∙‘상업적 대중주의’가 기왕의 권력논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변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인 공영방송과 방송 내부의 노력(방송인의 전문직주의, 이와 필수적으로 연관되 는 직능조합∙노동조합 등) 역시 강화되기보다는 약화되는 길을 걷고 있다 이 점에서 지난 역사를 상기시키는 노력은 이러한 삼자 사이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론 차원 에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시기 구분 : 거시적 구분 방송역사의 서술에서 두 번째로 부딪히는 문제는 시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이다 이 는 앞서의 관점에 따라 방송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계기를 추출하는 과정 을 밟는다 앞서 본대로 국가의 영향은 매우 압도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방송을 포함해 언론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이 기준으로 시기를 나누었다(대표적인 것으로 김해식, 1994) 이 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의 방송이 크게 변화 - 새로운 채널이나 미디어의 도입, 4) 이 삼자 관계는 코헨과 아라토(Cohen & Arato, 1992)가 재구성한 하버마스적 삼 영역이론에서는 국가-경제-시민사회로, 유럽 미디어의 발전과정을 연관된 후견권력에 주목한 갈퉁(Galtung, 1999)에 의해서는 국가-자본-시민사회로, 이를 원용한 하멜링크 와 노르덴스트렝에 의해서는 국가-시장-시민사회로 변용∙제시되었다 필자가 하멜링크 등의 구분을 따라 자본을 시장으로 바꾼 이유는(하멜링크 등은 이유를 밝혀놓지는 않았다) 시장이 자본/생산에 의해 완벽하게 지배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며 (예컨대, Hall, 1973/2003), 경쟁∙소비가 빚어내는 시장현상의 다양한 측면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미디어시장에서는 공 영방송처럼 사기업적 축적논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으므로 이 같은 변용의 이유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5) 이를 미디어의 책무성(accountability) 차원에서 전개한 연구는 맥퀘일 등(Bardoel & d’Haenens, 2004; McQuail, 2003)을 들 수 있다 � 47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관련 제도∙법령의 개폐, 방송유관기구의 변화 등 - 하게 되는 시점은 대체로 정치 권력구 조의 변화, 곧 정권의 변동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방송사의 시기 구분 역 시 정치사의 시기 구분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특히 이 점은 같은 언론인 신문과도 대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른 전기 외에도 시장적 측면이나 (방송)미디어 내부 의 변화 또한 한국의 방송사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첫 TV방송의 시작, 첫 민영라 디오방송의 시작, 첫 방송주무법인 방송법의 제정, 새로운 TV(MBC)의 등장과 본격적인 시청률 경쟁시대의 개막,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과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텔레비전을 대중화시킨 일련의 드라마의 성공, SBS의 등장에 따른 (후기)공민영 혼합제도의 시작, 케 이블TV의 도입에 따른 최초의 다미디어다채널 시대의 개막, 방송인을 대량 해직시키고 본 격적인 생존 경쟁이 도래했음을 알린 IMF 구제금융, 방송관련 주무기구를 통신과‘융합’ 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만든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 등은 정권의 변동과 다소의 시차를 가 진다 물론 넓게 보면, 방송 내부의 것 일부를 제외하면 정치권력과 동떨어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부분의 단절적 계기들이 정부∙여당의 노력이 아니면 달성될 수 없 는 법의 개폐와 직결되고, 그간의 한국경제의 관치(官 )적 성격을 감안해 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순수하게 시장적인 것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일쇼크나 금융위기 같은 것은 국외에서 벌어진 일이 국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정치권력과 큰 연관을 맺지 않 는 몇 안 되는 변화의 계기이다 SBS나 케이블TV, 위성방송 같은 뉴미디어의 도입도 이전 의 KBS-TV나 언론통폐합만큼 직접적이지는 않으나(바꿔 말해 약간의 시차를 두기는 하 나) 그 사안 자체는 정치권력의 지극한 관심을 받아온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차가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러한 시차는 대부분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 나타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전의 ‘정권 변화→방송의 변화’라는 동시적 도식이 다소 지체되거나 일정하게 변형되었다고 보 기 때문이다 이 도식은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은 정권 또는 (일정하게 돌이키기 어 려운 행정적 조치를 취한다는 의미에서‘통치적’행위를 하는) 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해 방송에 일정한 단절적 조치를 취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조치가 일반적으로 민주적 법령이 취해야 하는 절차적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자명 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엄격하게 보면 무효화될 여지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 후의 과정은 조금 다르다 보기에 따라 편파나 다수의 전횡이 없지는 않지만(특히 민주화 � 48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초기), 대체로 선거의 절차가 준수되어 적어도 이전의 권위주의 같은 모습은 탈피한 것이 다 시차는 대체로 이를 반영한다 정권 측의 일정한 의도가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대∙비 판에 부딪히면서 일정한 변형을 가져왔고 시차는 이러한 반대-절충-변형의 기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뜻은 아니다 이 전과는 다른 나름의 절차를 밟았고(그래서 시차가 생겼으며), 그 과정 자체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정권적 측면보다는 다른 측면의 변화, 예를 들어 다미디어∙다채널 시대를 연 케이블TV의 등장(미디어 내부의 변화)이나 시장이 방송 을 움직이는 본격적인 변인으로 등장하게 되는 IMF 구제금융(이하 IMF 위기; 경제적 측면 의 변화)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 이 글은 1990년대 이후의 여러 변화 가운데서 가장 큰 것으로 첫 다채널 플랫폼으로서 케이블TV가 이끈 국민의 시청패턴 변화를 꼽고자 한다 이에 비견할 만한 변 화로는 시장을 다시 전면화시킨 계기인 SBS의 도입, 앞서의 IMF 구제금융, 시청자권리를 명문화한 통합방송법의 제정, 통합미디어인 인터넷의 보편화, 위성방송∙DMB∙IPTV 같 은 후속 다채널∙이동 플랫폼의 도입, 신문기업의 방송진출과 종합편성방송을 대거 등장시 킨 미디어법의 개정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SBS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정착시켜야 한다 는 당시의 시대적 과제에 역행해 시장경쟁을 격화시킨 경우이지만, 이후 SBS가 지상파방 송의 공공적 틀에 묶여 상업방송의 대표 주자로서보다는 오히려 선발 (공영)방송과 같은 행 보를 많이 취했고, 시청률 경쟁의 이유로서도 뒤의 케이블TV나 위기를 가져 온 IMF보다 결코 크다고 하기 어렵다 야당 집권의 산물인 통합방송법의 경우는 법이 선언적인 명문화 에만 그쳤다는 비판이 많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보기 어렵다(달리 말해 시청자 권리의 실현이 다른 것에 밀렸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이 주도한 변화는 당연히 시기 구분에 값하 는 큰 것이지만 텔레비전에 국한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위성방송 등의 등장은 케이블TV에 비해 시기 면에서도 뒤처지고 지금의 성세도 케이블TV에 미치지 못하며, 최근의 미디어법 의 개정은 그 영향이 아직 미지수이다 IMF 위기는 시장 같은 구조적인 변인에서 중시할 수 있는 계기로 앞서 언급한 대로 방송 현장에서는 일상적 시청률 경쟁으로 나타난다 만약 한국경제 초유의 위기였던 이 시기 이 후 한국 방송에서 치열한 시청률경쟁이 점화되었다면,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이 점을 더 중 시해야 할 것이다 실제 정치∙사회학계 일부에서는 이 시기 이후를‘신자유주의의 보편 화’로 보면서 민주화의 전기가 된 해인 1987년과 같은 무게로서‘98년 체제’로 부르기도 한다(손호철, 2009; 이의 비판에 대해서는 김종엽 편, 2009) � 49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그러나 방송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 방송이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 도 여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청률 경쟁이다 한국처럼 경제가 꾸준하게 성장해서 방송 사 간 나눠먹을 파이가 (적어도 1970년대 이후에는) 충분했고, 대부분의 방송이 국∙공영 형태여서 시장의 압력이 직접적이지 않았던 나라에서 이처럼 시청률 경쟁이 치열했던 이유 는 여러 가지로 짚어질 수 있지만, 그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전 일적 공영제와 관리시장 제도가 실시되었던 1980년대에도 시청률 경쟁이 치열했음은 이 경쟁이 단순히 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준다.6) 따라서 IMF 위기는 이러한 시청률 경쟁을 더 높은 정도로 격화시켰을 뿐이지 없던 것을 있게 만든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시기 이후 광고비의 성장이 처음으로 지체∙저하되기 시작했고, 채널∙미디어가 수없이 증가하면서 경쟁이 극심해졌다는 점은 충분히 수긍할 만한 큰 변화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한국 방송이 시장에 직접 노출되는 전기가 된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의 경우, IMF 이후에도 여전히 관리시장 구조가 유지되었고, 특별하게 경영이 위기에 처한 적이 없으며‘우세 사업 자’라는 시장적 지위에서도 큰 변동이 없는 점 등은 아직은 이를 역사적 시기 구분의 계기 로 볼 만하지 않다는 점을 예증한다 최초의 다채널∙유료TV로서 출범한 케이블TV는 곧이어 터진 IMF 위기로 인해 연착륙 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1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국민적 플랫폼’이라는 별명 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경지로 성장했다 물론 성장과정에서 수많은 상업적 편법이 동원되 었고, 지금도 가장 상업적인 홈쇼핑채널들이 공영방송들을 포위한 기형적 채널 레퍼투어를 가지며, 여전히 지상파방송의 재방송과 수입 프로그램에 콘텐츠의 대부분을 의존해‘국민 적’이라는 긍정적 수식어를 사용하기에 많은 손색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몇 개의 채널에 머물렀던 자원 희소성의‘방송’을 풍요의 다채널로 대체한‘미디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케이블TV의 공헌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용자의 입 장이나 시청패턴에서 볼 때, 케이블TV는 텔레비전의 인식을 바꾼 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의 도입 시점(1995년)을 역사적 단절의 계기로 보 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초기의 케이블 TV가 보급률이 높지 않아서 도입 때부터 다미디 어∙다채널 시대로 분리해 서술하기 어렵고, 또 다채널 효과는 최초의 야당 집권∙인터넷 의 폭발적 보급과 결합해 주로 2000년대 들어 나타나며, 처음의 제도적∙산업적 얼개 역시 6) 이 점의 단적인 예는 5공의 엄혹한 권위주의체제에서 벌어진, 사실상 모/자기업 간인 KBS, MBC 사이의 스포츠 중계권 경쟁 일 것이다(조항제 편, 2000에 이를 보도한 당시 신문기사가 전재되어 있다) 당시로서도 체제가 직접 나서‘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런 경쟁은 한국 방송의‘어떤 단면’(곧 권력적 측면)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 50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텔레비전 보급 필요성은 매우 컸다 따라서 국가는 당시 수상기 생산에 필요한 기자재의 수 입을 허가했으며(‘정부가 지정하는 판매가격과 보급방법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허가했다), KBS의 재정을 위해 수신료 1년분을 선납 받은 후에 수상기를 인도했다 따라서 당시 텔레 비전 수상기 생산사는 총 생산계획과 월간 생산계획량을 주무 부처(문화공보부) 장관 및 중 앙방송국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대통령재가문서, 1966) 수상기의 국내 생산은 1966년 7월 금성사가 일본의 히다치와 기술제휴로 대당 75%의 주요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생산을 처음 시작했다(한국방송회관, 1972) 그리고 다음의 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로 1960년대 후반에는 수상기 생산이 비약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전자공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수상기 제조산업은 본격적으로 성 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에서 보듯 1960년대 한국의 국가는 전제적 권력과 하부구조적 권력 을 모두 갖춰 다른 경쟁 인자들을 압도했다 연도별 TV 수상기 생산실적과 증가율(1966~1970) (단위: 대, 괄호안 %) 연도 1966 1967 1968 1969 1970 생산량 10,500 36,567(248.3) 30,472(-16.7) 70,430(131.1) 120,868(71.6) 출처: 한국방송회관(1972, 76쪽) 3) 동원적9) 대중화기(1969~1980) 잘 알려져 있다시피 MBC TV는 당초 교육방송으로 출범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당시의 허가기준이 상업텔레비전의 신설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의 경제수준에 비추어 새로운 텔레비전이 원활히 운영되기는 어려웠으며, 이에 따라 당시 국가는 KBSTV의 광고를 중단해 그 광고분을 MBC로 돌려주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광고세를 신설하 거나 TV수상기에 포함된 물품세의 일부를 KBS-TV의 특별회계로의 전입하는 등의 대안을 9) 처음에 이 수식어는 당시 체제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억압적’(coercive)이었다 뒤에 나올‘억압적 공영방송기’역시 같은 의도였다 그러나 박정희체제에 대한 최근 논쟁(예컨대, 그 산물로서 조희연, 2010 참조)이 보여준 바대로 이러한 수식어는 다 소 민감한 대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글의 심사위원 한 분 역시 억압적이라는 표현이‘설명적이지 않고 진부하다’고 비판 하면서‘동원적’(mobilized),‘관치적’(administered)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필요한 지적이라고 생각 하지만, 다른 수식어 역시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원은 당시 체제의‘개발’적 성격에 주목한 것이지만 이 방법이 현 저히 비민주적∙강제적 수단이었다는 점(특히 유신체제에서)은 경시한다는 느낌을 주며, 관치는 방송의 타율적∙국가 지배적 측면을 부각시키지만‘관’이라는 말이 주는 제도적 어감이 긴급조치 같은 초법이 빈번했던 당시의 억압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특히 5공의 공영방송은 언론통폐합이라는 초유의‘국가폭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동원적이나 관치적이라 는 말에는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대중화시기의 경우에는 국가라는 후견권력 또한 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는 측면에서‘동원적 대중화기’로, 공영방송기의 경우에는 언론통폐합의 강압성과 공영방송 자체의 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시의 대립상(‘이념의 억압’과‘이념의 구현’사이)을 적시한다는 면에서‘억압적 공영방송기’로 부르고자 한다 � 57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검토했다 그러나 결국은 추가경정 예산과 수신료 인상(200원에서 300원으로) 등의 나름의 예산원칙을 지키는 방식으로 낙착되었다.(대통령비서실, 1969)10) 자금이나 기자재 등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이 차단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MBC-TV 는 영국의 Pye와 미국의 Ampex로부터 상업차관을 받는 등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고, 이전의 라디오방송과 나중의 의 인수 등을 통해 앞서 제시했던 미디어복합기업 의 필요조건을 채울 수 있었다 MBC의 경우는 사사( )를 비롯한 여러 문건에서 볼 수 있듯이 주식공개를 비롯한 기업적 주요 결정사항에서 청와대의 직접적인 결재를 받았다.11) 그러나 이렇게 국가적으로 형성된 시장이었지만, 세 텔레비전이 경쟁을 하면서 시장 또 한 나름의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상기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이 루어져서 1969년에 22만 대에 불과했던 것이 1979년에는 5백만 대(세대당 보급률 78.5%) 가 넘어 명실공히 텔레비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미디어가 되었다 또 1973년에는 KBS 가 공사화됨으로써 KBS 역시 편성과 프로그램 제작 일부에서는 대중을 의식하는 자율성 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에 시작되어 1971년에 끝난 일일극 는 공전의 히 트를 기록하면서 텔레비전에서도 인기 장르가 가능하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이는 이후의 ,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일극을 이 시기 텔레비전의 대표적인 인기 품목으 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의 편성, 특히 1973년의 오일쇼크를 전후한 시기를 보면 세 방송이 모두 유사한 패턴 을 보이는데, 이는 시청률을 위해 최소한으로만 법을 지키는 것이다 즉 이 편성은 교양과 오락의 구분이 애매한 점을 이용해 다양한 오락프로그램을 교양으로 분류하며, 오락물의 대부분을 스파트 광고를 많이 넣을 수 있는 짧은 시간 단위의 일일극과 홈코미디를 위주로 하는 것이다(신문평론 편집부, 1973; 조항제 편에 재수록) 특히 일일극은 이 편성의 핵심으 로 1973년의 경우, MBC는 6개, TBC는 5개의 일일극 띠를 깔았다(KBS 역시 4개)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편성은 거의 매년 제재 조치가 취해질 정도로 잦은 체제의 개입을 불러오게 된다(다음의 참조) 이러한 체제와 상업성 사이의 갈등은‘권위주의국가’ 와‘저항적 시민사회’사이라는 전형적 갈등구도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그 이유와 맥락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갈등은 상업성이 결코 반체제적 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의 체제가 가진 극단성에 일차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 조항제(2003)는 당시의 특별회계를 기준으로 KBS의 광고의존을 2억 4천만 원 정도로 추산했는데(전체 재정의 50%) 실제 이 문건에서 제시된 액수는 2억 8천만 원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KBS는 50% 이상의 재원을 광고에 의존했다 11) 예를 들어 1976년 9월 10일에 결재된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의 주식공개와 관련된 문건(대통령비서실, 1976)을 참조할 수 있다 � 58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즉 사실상의 종신집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 1974년과 1975년 사이에만 수차례의 긴급조 치를 발표할 정도로 헤게모니의 균열이 심해진 유신체제는 상업적 일일극이 보여준 다소간 의 말초적 자극성(특히 여성 소구)조차 소화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 방송에 대한 문화공보부와 방송윤리위원회의 주요 조치(1971~1979) 구분 문화공보부 1971 1972 방송사 신설 억제조치 발표 부실 방송국의 재허가 유보조치 발표, 포괄적 ‘유신규제’발표 방송법 개정, KBS의 공사화 방송정화실천요강 제정, 편성 기본방향 시달 (새마을방송협의회 확장), 난시청 해소사업 실시 긴급조치 세부규정 통보, 광고세 설치, KBS∙ MBC 각각 ∙ 인수 정책시간대 설치, 시간대편성지침 발표, 광고량 축소 코미디프로그램 제한, 방송사 자체 심의 강화 전파관리법 시행령의 개정(3년에서 1년으로 단축) 1973 1974 1975 1976 1977 1979 방송윤리위원회 방송심의기준 제정 방송윤리심의준칙 발표 광고 사전심의제 도입 방송극 정화기준 발표 건전방송강화기준, 건전생활화를 위한 광고 심의기준 발표 출처: 조항제(1994, 143쪽)에서 일부 수정 둘째, 이러한 텔레비전의 상업성이 체제로 하여금 제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회 각계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12) 당시 신문을 중심으로 볼 때, 일일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하는 텔레비전은 식자층, 청년층, 남성층 등에게‘저속’,‘퇴 폐’등의 이유로 거세게 비판 받았으며 이들은 주무 당국에 이러한 드라마의 규제를 요구 하였다 셋째, 그럼에도 매년 제재조치가 취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의 상업방송이 나름의 저 항성(일종의 체제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체제의 요구 외에도 방송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일극이 여전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의 이유는 결국 재생산을 위한 이윤(자본 축적)으로 볼 수 있다 즉 12) 이러한 비판적 태도도 텔레비전에 대한 시민사회의 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상업방송에 대한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비판적 여론은 사실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해도 큰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당시의 이 대응이 시민사회적 규범성에 어울리는 것이었나에 대해서는 또 다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조항제(2011)의 주장에 따를 경우, 이 비판의 이면에 는 당시의 여성층에 대한 뿌리 깊은 폄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 59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당시의 텔레비전들은 컬러TV에 대한 준비와 아울러 새로운 스튜디오(사옥) 마련 등의 이 유로 많은 자본이 필요했으므로 저렴한 제작비와 높은 시청률, 잦은 광고기회, 용이한 편성 등의 장점을 가진 일일극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대중미디어로 성장한 텔레비전에 다수 적 평등성을 추구하는 포퓰리즘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는 시민사회 역시 서서히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의 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운동 때부터 언론계의 동향에 관심을 기울여 오던 시민사회는 1974년과 1975년의 동아∙조선 언론자유수호투쟁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당 시에 쏟아진‘격려광고’의 다양한 직업별 분포는 대학생을 비롯해‘집단적 시민’이 언론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975 14) 그러나 이 시 기만 하더라도 텔레비전은 아직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이유는 정치정보∙여론형성력 등이 여전히 신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텔레비전도 점차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었다 텔레비전 의 본산인 미국에서도 텔레비전 뉴스는 케네디대통령의 암살과 베트남전쟁 등으로 이어지 는 1960년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30분짜리가 되면서 비로소 비중이 높아졌다(Keirstead, 1996) 1970년에 MBC가 처음으로 앵커맨이 등장하고 기자가 직접 뉴스를 전달하는 뉴스 쇼 포맷을 도입13)한 이래 이 포맷이 보편화되면서 텔레비전도 나름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 었다 한국에서 공영방송의‘첫 단추’가 된 KBS의 공사화는 사실상의 종신집권체제였던 유신 과 맞물렸고, 또 명분과 실제가 다른 허울에 그쳤다는 점에서 그리 적극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형식적 틀에서는 그간 꾸준하게 제기된 시민사회의 주장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 다 방송의 민주성∙공정성에 대해서는 이미 1948년 때부터 논의가 있었으며, 방송구조∙ 조직이 변화되는 계기 때마다 일관되게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조항제 편, 2000 참조) 또 이러한 주장을 정책 당국에서도 그렇게 거부만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의 체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그 이유는 공사화가 가져올 수 있는 합리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 렇게 경제적∙경쟁적 측면만 고려한 점은 KBS의 공사화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에 해당 하지만, 이 합리화가 적어도 KBS를‘국영’(방송)이 아닌 (공영)‘방송’으로 간주하는 효과 는 가져왔으므로 나름의 의의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14) 13) 그 맥락과 자세한 사정은, 1972년 5월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조항제 편, 2000 참조) 14) 이 점을 적절히 보여주는 상징적 예는 1973년 공사화가 되면서 비로소 KBS의 기자들이 기자협회에 가입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 60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4) 억압적 공영방송기(1980~1987) 시장과 시민사회가 나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무렵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언론의 초법 적 구조개편이 다시 시도되었다 이때에 이루어진‘언론통폐합’은 방송통폐합이라고 불러 도 될 정도로 방송 쪽에 집중되었다 상업방송인 TBC15)를 KBS(2TV)에 통합시키고 KBS 가 MBC의 사실상의 소유주가 되는 언론통폐합을 통해 한국 방송은 전일적 공영제 또는 공 영독점제가 되었다 여기에 방송광고공사를 신설해 방송광고를 독점적으로 대행, 광고시장 을 완전한 관리시장으로 만들었다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KBS는 광고를 재개했으며, 컬러TV를 도입하고 시청료를 2500원으로 크게 인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단행했다 이 과정 에서 동아방송이나 대구FM 같은 나름의 특징을 가진 방송들도 모두 KBS에 흡수되었다 이의 명분은 제도로서의 공영방송이었다 이전에 약간의 논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구체성은 없었던 공영방송에 대한 본격적인 연 구와 논의는 이렇게 먼저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공영방송이라는 한 국적 용어도 이 과정을 통해 정착되었다(강형철, 2003) 이전까지만 해도‘공사화’나‘공공 방송’(1970년대),‘공영화’(1980년대) 같은 단어가 응변( )적으로 쓰이기는 하였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는 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ing)에 대한 본격적 개념화는 시도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사후에 현실을 인정받는 권력 측의 의도된 효과보다는 오히 려 집중적인 비판을 초래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한국의 공영방송이 보여주는 현실이 너무 나‘원칙’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예는 많았다 KBS 2TV 망의 전국화와 전격적으로 단행한 컬러화 때문에 오히려 늘어 나게 된 KBS(1TV)의 광고, 사실상 자/모회사의 관계에 있는 KBS와 MBC 사이의 편성 차 별화 실패와 관리시장 하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진 시청률 경쟁, 자율적 공영에 전혀 어울리 지 않는 인사와 운영의 타율성, 이름뿐인 방송주무 기관(방송위원회)의 허울, 무엇보다도 공정성과 거리가 먼 뉴스의 편파성 등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부를 수밖에 없는 당시 공영방 송의 현주소였다 15) 여기에서 한 번 TBC가 가진 역사적 의의를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초의 상업텔레비전인 TBC는 잘 알려진 바대로 를 성공시켜 텔레비전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고, 주말드라마를 처음으로 고안하고 앵커맨제도를 정착시키는 등 수많은 혁신을 가져왔으며, 를 수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해 시청자의 인기를 모았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전국화에는 실패한 서울텔레비전이자 최초의 지방(부산)텔레비전이기도 했다 삼성의 텔레비전으로 한 비사건 때는 여론을 오도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짙은 상업성과 얄팍한 편성경쟁으로 저질방송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 다 TBC의 방송인력은 KBS로 흡수되어서도 나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관료적 KBS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 나 이러한 TBC는 억압적 체제가 종식되고, 사실상 불법적 찬탈이 밝혀진 1987년 이후에도 복원되지 못했다 소유(재벌, 와의 겸영)나 정체성(상업방송)이 가진 한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 61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물론 통합∙거대화에 어울리는 다양한 장점도 나타났다 아침방송이 현장정보프로그램 위주로 재개되면서 방송 전반에 큰 활력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스튜디오를 벗어 나고 대형화되면서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저질의 대명사였던 일일극의 비중이 크게 낮아졌고 한 방송은 아예 일일극을 없애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뉴스는 시간이 고정되었 고, 단위 시간도 늘어났다 ENG가 보편화되고 컬러화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텔레비전의 볼 거리가 크게 늘어났다 KBS 2TV의 방송망이 확장됨으로써 드디어 전국이 세 채널의 시대 를 맞이하게 된 점도 큰 변화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현실 비판을 더욱 가속시키게 되었다 공영 방송 체제가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역설이 빚어진 것이 다 예컨대 뉴스의 공정성 주장(원리)을 하면 뉴스의 편파성(현실)을 두드러지게 하고, 운영 의 자율성(원리)을 외치면 타율적 인사나 관료적 운영(현실)이 비판 받는 식이다 특히 구조 개편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상업성의 배제와 프로그램의 질적 제고는 프로그램의 현장성∙ 심층성을 높이고 표현의 자유를 넓히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 1970년대와는 또 다른 차원의‘체제와 시장의 이반’을 불러왔다 이 점은 1985년에 시작된‘시청료 거부운동’,‘KBS 안 보기 운동’이라는 초유의 전 국 민적 방송거부 운동의 이유가 되었다.‘저항하는 시민사회’의 가장 전형적인 예 중의 하나 인 이 운동은 공영방송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유일한 시민의 고리인 시청료를 정치적 이유 로 거부하고 사회민주화를 목표했다는 점에서 공영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뒷받침한 당시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운동이었다(다음의 참조) 시청료 거부운동의 목표 구분 수단적 목표 1차 목표 (과정적 목표) �왜곡편파보도 중단 �공영방송의 광고행위 중단 �저질, 퇴폐방송 중단 �권력 유지 방송 중단 주요 운동 목표 KBS-TV 시청료 거부 또는 폐지 부차적 운동 목표 �언론 수용자의 능동적 의식화 �민주시민의 권리 회복 의식화 �언론운동단체와의 연대활동 자료원 : 김기태(1995 180쪽) � 62 � 2차 목표 (최종적 목표) �방송민주화: 방송의 공익성∙ 공정성 실현, 수용자 중심의 방송 실현 � 사회민주화: 정치적 민주화 실현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5) 민주화∙자유화기(1987~2000) 한국의 민주화를 보는 여러 이론( )이 존재하지만, 공통된 점을 찾는다면 이 민주화가 일종의 (기존 체제와)‘협상된 것’,‘불충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점은 방송에서 더욱 두 드러진다 기껏 MBC의 소유주가 달라지고(방송문화진흥회), 주무 기관(방송위원회)이 약 간의 힘을 부여 받는 선에서 변화가 그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화가 최소화된 가장 큰 이 유는 공영방송이라는 기존 구조와 이념에 대한 나름의 사회적 합의가 컸기 때문이다.16) 공 영방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도입의 의도와 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17) 그러나 권위주의의 잔재는 작지 않았고, 현장에서 나타난 현실의 갈등은 이보다 훨씬 컸 다 합법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기존의 각종 비민주적 관행에 대한 저항과 기존 체제의 반 발이 현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사장의 인사였다 이때 시작된 집권 정부의 정치적 임명과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국가-시민사회의 대립은 민주화 이후 한국의 공영방 송이 정치적 독립이라는 명분에 어울리는 내실을 찾아가는 데 가장 중심적인 계기가 된다 이 시기 들어 국가가 일정하게 민주화되고, 방송도 이에 따라 제한적이지만 자율화되었 으며, 시민사회 역시 방송에 대해 본격적으로 주목∙참여하게 되지만,‘억압적 체제와 저항 적 시민사회’(1980년대)(국가-시민사회),‘통제 체제와 상업적 시장’(1970년대)(국가-시 장),‘국가의 시장형성정책과 순응적 시장’(1960~70년대)(국가-시장) 같은 기존의 관계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다 특히 국가가 여전히 주도적으로 나서 새로이 상업방송(SBS)과 케 이블TV∙지역민방을 도입해 시장을 변화∙형성시키는 점이나 일부 프로그램의 역( )편 파 논쟁이 빚어지면서 드라마 이 중단되는 점, 상업방송의 도입에 반대하면서 노동조 합이 파업을 단행하고 노조와 시민사회가 연대하는 점, 시장압력이 더욱 커지면서 내부 노 동통제가 강화되는 점 등이 그러하다 물론 일부 프로그램을 통해 공영방송의 필요성이 사회 전체로 파급되고, 노조가 활성화되 면서 방송 내의 의사결정 구조가 다원화되는 점, 방송 내의 일이 수시로 시민사회로 이전되 면서 협조와 연대가 이루어지는 점 등은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발전된 면모로 볼 수 있다 16) 예를 들어 당시 문화방송의 노조는 노보 창간호(1987 12 1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본래적 의미의 공영방송이란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당대 권력의 손아귀로부터 보호,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장치였으나 우리의‘공영방송’은 권 력이 방송을 독점하고 도구화하기 위해 허울뿐인‘공영’을 간판으로 내건 데 지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주인인 시청자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비난받는 현실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왜곡, 굴절되어 온 방송체제는 전면적으로 고쳐져야 하며 ‥ 이것은 저 빛나는 6월 투쟁으로 우리에게 방송민주화운동의 공간을 확보해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 이기도 하다.” 17) 더 정확하게는 1970년대식의 상업방송에 대한 반감 때문이 더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공의 언론통제에는 반대했지만 언 론기본법의 소유제한이나 시장규제에는 찬성하고 있었던 당시 민주화세력은, 특히 신문(중앙일보)까지 경영하고 있던 재벌 에게 TBC 같은 방송을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나중의 SBS에 대한 반대로도 연결된다 � 63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그러므로 이 시기는 민주화의 물꼬를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만들었다는 점에 민주화∙자유 화기로 명명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6) 경쟁∙시장기(2000~현재) 케이블TV가 도입이 되었지만 곧이어 터진 한국경제의 파국(IMF)은 한국 최초의 유료 TV인 케이블TV의 정착을 크게 제한하게 된다 이 시기의 변화는 초반에는 최초의 야당 집 권이 준 기대가 나름의 결실을 이룬 2000년의 통합방송법이 주도한다 이념으로서 시청자 권리를 최초로 법이 인정하고, 방송 주무 기관이 시민사회의 참여를 허용한 독립된 공공기 구가 되도록 한 방송법은 한국 방송에서 숙원을 이룬 나름의 전기로서 손색이 없다 따라서 이 시기가 되면, 이제 체제-시장-시민사회 사이에는 기존의 전형적인 관계 외의 다른 측면 들이 생겨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구도에‘민주적 체제와 협조적 시민사회’(국가시민사회),‘국가의 규제와 탈 규제적 시장’(국가-시장),‘(국가적) 공영방송과 (시장적) 유 료 상업방송’(국가-시장),‘상업방송과 대안적 방송’(시장-시민사회) 같은 새로운 관계 쌍 들이 추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 방송을 둘러싼 3자 관계는 다층적이면서 다면 적 관계로 변전된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미디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경 제가 극도로 중요해진 IMF의 유산으로, 그리고 인터넷과 융합으로 상징되는 자유화 추세 에 야당 정부(들) 역시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방송법의 정신과는 부분적으 로 상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화가 고취하는 탈규제적 시장과 산업화는 시민사회의 민주적 공공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민간기구로서의 방송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서의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뀌는 점이 다 많은 이유(특히 테크놀로지 내적인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이제 방송은 다시 국가의 산 업적 정책의 일부로 편입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방송의 기존 판도가 서서히 바뀌는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 시기 들 어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의 보편화와 더불어 케이블TV를 비롯한 다채널 플랫폼과 유료방송이 정착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유화와 시장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시장 권위주의’라는 표현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시장과 국가 사이의 관계가 지난 시대와는 다르 게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18) 네 개의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고, 지상파의 관리시장체제가 18) 국가의 시장 규제 의무가 이처럼 방기되고, 시장이 국가정책에 순응한다면, 국가와 시장 사이를 나누어야 하는 필요성은 반 감될 것이다(예를 들어 정용준, 2006) 그러나 시장과 국가 사이는 결합이냐 갈등이냐의 관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쪽이 우선권을 쥐면서 관계를 주도하느냐도 중요하다 종편과 광고시장의 자유화는 이 우선권이 시장 쪽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 한다 � 64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균열되는 예고된 변화는 이 추세를 더욱 확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시장 내에서 꾸준히 선전하고 가장 우수한 제작센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영방 송의 위상은 답보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야당 집권 같은 민주화의 심화에도 KBS의 정당성 은 결코 상향되지 못했고(수신료 인상의 실패),19) KBS 2TV의 상업성과 사장의 인사문제20) 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견제세력인 노동조합마저 변질∙다원화된 것이다 합의되지 못 한 MBC의 소유구조 역시 부담으로 남았고, 같은 고발프로그램은‘송사’에 시달 리고 있다 급격한 변화를 거부해 온 200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의‘부정적 연합’(negative alliance) 체제(강형철, 2004)는 공영방송을 비롯한 방송에 대한‘시청자 신뢰의 회복과 주 권의 강화’(수신료의 인상, 공영방송 사장인사의 공정성)보다‘더 많은 경쟁과 시장화’(종 편의 허용과 관리시장의 완화)의 길로 급격하게 방향을 틀면서 해체되고 있다 같은 기간 상 업방송이 실패시킨 디지털화를 성공으로 이끈 BBC와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시민사회에서는 일종의‘성공의 위기’21)가 나타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통합 방송 법 이후 시민(언론)운동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상승하면서 오히려 과부하(이를테면, 부분 적‘국가화’)가 걸리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시민사회는“정치사회를 비판하면서 동시 에 위축된 정치사회를 회복시켜야 하는 이중과업을 떠안게 된 것이다”(조효제, 2004, 100 쪽) 물론 이 과정은 시민운동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시민사회를 과잉 행위 주체화시키는 등의 큰 부작용을 낳았다 또 다르게는 야당 정부에 반대하는 보수적 시민운동이 등장해 19) KBS의 수신료 문제는 여러 가지로 원인이 짚어질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KBS를 특별하게 차별화시키지 않는 한국 방송 전반의 구조 때문이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KBS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라고 볼 수 있다 그간 한국의 지상파방송은 ‘여러 공영방송들’이 모두 광고의 관리 시장에서 독점과 균분의 혜택을 누렸으며, 이 점에서는 공영방송의 비상업적 모델에 가장 가까운 EBS나 KBS 1TV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유독 KBS만이, 그것도 같은 KBS에서 한 채널(2TV)이 다른 채널들과 치 열하게 시청률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수신료를 받는 정당성이 입증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특히 혼합적 형태(공적 소유와 상업적 재원)를 지니면서 구성원 스스로의 공영방송 정체성이 강한 MBC는 KBS가 수신료의 국민적 당위성을 확립하기 어렵 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런 이유로 공영방송의 책무성이나 거버넌스 측면만을 따질 때, 한국의 방송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 또한 MBC이다 소유와 운영이 각각인 MBC를 기존 공영방송의 체계에 넣게 되면“적정한 책무성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가 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방정배 외, 2008, 203쪽) 그러나 달리 보면 한국처럼 방송의 독립성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MBC같이 ‘상업적 동기가 작은 상업방송’은 오히려 매우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20) 주지하다시피 이 정부 들어 KBS사장이 교체되는 과정은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의 한 국정담당자의 인터뷰 제목은 공영방송의 독립에 대한 한국사회의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웅변으로 말해준다.“KBS사장, ‘ ( 정부산하 기관장’으로서)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 적극 구현할 사람 돼야”(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 정현상, 2010; 괄호 안은 인용자) 21)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성공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잘 드러난다.“언론노조가 해왔던 한국사회 제도변 화 운동은 낙하산 인사에 대한 거의 완벽한 방어까지 포함해 대부분 현실화되었다”(양문석; 최용익 외, 2008, 372쪽) 노조위 원장이 사장이 되고, 시민운동단체의 간부가 방송주무기관의 부위원장이 되는 현실은 이런 진술이 어느 선까지는 결코 과장 이 아니었다는 점을 웅변한다 이러한 한국 방송의‘성공의 위기’는 비단 시민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난 다 이의 한 예는 한류이다 일부 드라마프로그램의 국제시장에서의 성공은 예기치 않은 자금 유입을 불러와 제작비를 크게 상승시키는 등 한국 방송의 시장화를 가속시켰다 � 65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시민사회의 이중화 현상22)이 방송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논의 및 결론 지난 한국 텔레비전의 50년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좋은 말은 아마도‘발전’일 것이 다 이에 따른‘성공의 위기’도 작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부로 수상기를 억지로 보급 시키면서 등장한 텔레비전을 한류로 통칭되는 지금의 국제적 텔레비전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민주화, 시장의 견제와 활용, 시민(사회)적 참여의 제고, 공영방송의 정착, 방송 전문직주의의 고양 등에 비추어 볼 때, 해결해야 할 숙제 또한 산적해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은 수많은 격변이 지나갔음에도 지난 50년을 돌이켜 (상대적으 로)변하지 않은 다음의 것에서 잘 드러난다 첫째, KBS의 수신료가 1980년 이후 전혀 인상되지 못한 채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정체 되어 있다는 점은 공영방송의 정당성 부재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을 단적으로 예증한다 이와 관련해 역시 수없이 논의되었지만 과거의 TBC 와 적어도 상업성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2TV 또한 한국 방송의 현주소를 잘 보 여준다 둘째,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가장 파행적으로 반복된 것으로, 공영방송의 사장 임명과정에 서 불거지는 (국가)권력의 개입 논란이다 이 점은 정치를 비롯해 한국사회의 모든 경쟁구 조가 승자 독식으로 되어 있고, 상대를 믿는‘사회적 신뢰’가 아직도 현저히 낮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유럽에서도 사장 임명은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지만 그렇게 논란이 되지 않는다 정치 외의 다른 측면이 충분히 성장해 있어 임명의 정치성을 잘 완화시켜주기 때문 이다 셋째, 수없이 논의되었지만 MBC의 지배(소유)구조 역시 바뀌지 않았다 MBC의 현 지 배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한국 현대정치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형성된 구조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물론 역사성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민감한 정치적 계산23)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지만, 한국처럼 22) 이러한 이중화 경향(‘이중적 시민사회론’; 김호기, 2001)은 방송에서는 다소 늦게 나타났다 그만큼 방송에서는 기존의 벽이 두꺼웠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시민사회의 불만 정도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23) 바로 그 정치적 계산 때문에 당초의 소유주인 김지태의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가 되었고, 1970년대 초의 급속한 네트워크 의 확장으로 부실해진 자금사정은 재벌들이 해결해주었으며, 그 지분이 언론통폐합 때 KBS로 갔다가 1987년 민주화되면서 다시 지금의 방송문화진흥회로 옮겨진 것이다(조항제, 2003 참조) � 66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방송의 독립성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 MBC같이‘상업적 동기가 작은 상업방송’의 존재는 그렇게 기형시될 것만은 아니다 넷째, 제도가 여러 차례 바뀌고 수십 년 동안 비판을 받았지만 1970년대에 정착된 치열한 시청률 경쟁 구도가 달라졌다는 보고는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엄혹했던 1980년대에 도 이 경쟁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관리시장 또한 이를 막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에 펼쳐 진 본격적인 시장화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를 쉽게 소화하는 장점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때문에 한국 방송에 (적어도 BBC적 의미에서의)‘교양시대’는 존재해본 적이 없 었고, 시민사회의 참여 같은 공영방송의 원론적 정체성은 불가능했으며, 노동 또한 쉽게 통 제되었다 다섯째, 유료방송이 보편화되고 국민의 채널플랫폼이 달라진 가운데서도 유효한 제작센 터는 대부분 지상파방송의‘통합 공장’에 머물러 있다는 점 역시 똑같다 물론 드라마를 중 심으로 제작산업(독립제작사)이 일부 활성화되었고 케이블TV 또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체 제작기반을 마련했으나 지상파방송에 대한 전체적 의존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점 은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양날의 칼’로 작동하는데, 방송노조의 정치적 위상이 유지되면 서 지상파방송의 공공성을 통해 시장화 경향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 과 채널이나 미디어가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소수에 의해 콘텐츠가 지배된다는 부정 적인 측면을 아울러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여섯째, 역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여전히 가장 상업적인 채널인 홈쇼핑채널이 가 장‘한국인의 중심’에 가까운 KBS 1TV를 비롯해 지상파방송채널들과 이웃해 있다는 점 을 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케이블TV가 지금 같은 성세를 구축하는 데 일등공신은 역 시 홈쇼핑채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직도 홈쇼핑채널들이 지금 같은 번호를 가져 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그러나 그들로부터의 현실적 이득이 지금처럼 크다면 ‘국민적 플랫폼’은 상업성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일곱째, 부산에서 TBC-TV로 처음 텔레비전이 시작된 이래 지난 50년간 로컬방송의 열 악한 지위 역시 전혀 달라져 본 적이 없다 다른 부문 못지않게 방송에서도 중앙 집중은 한 국사회의 큰 문제이지만, 다른 부문과 달리 그런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한다 여덟째,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시민사회의 참여 역시 지난 50년간 계속 낮은 수준이었다 야당 정부 10년간 시민사회에 우호적인 방송법이 통과되었고 일부 활발했던 개인 차원의 참여가 부작용까지 낳은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시민운동의 독립성은 훼손되었고 � 67 � 방송문화연구 | 2011년 제23권 1호 참여의 제도화는 지연되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가와 시장이 유착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작용이 강한 만큼 반작용 또한 활발해질 것이지만, 그 런 면에서‘시민사회적 시민’과‘시장적 소비자’사이의 조직적∙이념적 연계는 가장 큰 숙제로 남을 것이다 논의를 정리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시장-시민사회는 다양한 관계를 거듭해왔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초기에는 국가가 전제적 힘과 하부구조적 힘을 모두 발휘했 다 수상기 보급, 네트워크의 허가 및 확장, 프로그램 수입과 관련된 외환 사용 등 시장의 일 부 기능을 제외한 대부분을 국가가 결정했다 시민사회의 주장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결 정의 힘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경쟁이 시작되고부터는 서서히 시장의 자율성과 협상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기왕의 국가와 새로이 형성된 시장이 나름의 갈등과 절충을 했던 시기였다 이후에는 다시 국가가 전면에 나섰다 허울뿐 인 공영제도에서 다른 계기는 사전에 차단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시민사회의 저항적 정체성 은 이때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사이의 균형이 이 루어졌으나 곧 국가에 뒷받침된 시장이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IMF 경제위기는 이를 가속시켰다 케이블TV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자유화∙시장화는 이후의 분위기를 주도했 고 이는 시청자권리를 확립시킨 통합방송법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 영방송의 정착을 비롯한 구래의 숙제들은 해결을 미룬 채 산적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그동안 문제에 대해 대응했던 방법, 곧 드러난 것만 일시적으로 무 마하는 미봉책의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 한계는 방송만의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우리가 방송에 거는, 대중보다 한 발짝만 더 앞서 갔으면 하는 기대를 방송 또한 충족 시켜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염려하지만, 사실 더 짐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고치기 힘든 역사적 관성이다 우리가 역사를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다 � 68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참고문헌 강형철 (2004).《공영방송론》 서울: 나남 김기태 (1995) 한국의 언론수용자 운동.《언론과 수용자》 서울: 한국언론연구원 김종엽 편 (2009).《87년 체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과 새 전망》 서울: 창비 김해식 (1994).《한국 언론의 사회학》 서울: 나남 김호기 (2001) 시민사회의 구조와 변동, 1987-2000.《한국사회》, 3집, 63~87 대통령비서실 (1964).《동양TV》(보고번호 517호) 대통령비서실 (1969).《KBS TV 광고폐지와 교육방송 실시에 따른 재원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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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 employed in this study is one that focuses on the power relationships among the state, the market and civil society In the early stage when the market was underdeveloped, the state exerted infra-structural power Most of the main decisions, such as distributing TV sets, licensing and expanding networks, are made by the state After the formation of the system of market and competition, however, the autonomy and negotiating power of the market began to appear The 1970's thus were characterized by the conflict and conciliation between the state and the newly emerged market In the early 1980's the state acquired a dominant position again Ironically enough, however, the oppositional identity of civil society was created in this period After a short period of a democratization equilibrium in the late 1980's, the market backed up by the state began to play a dominant role The economic crisis of the late 1990's accelerated this trend of market domination The continuing dominance of the free market was not altered even after the Broadcasting Act of 2000 For this reason old problems including the establishment of a true public service broadcasting system were left unsolved Key words : television, history, the state, the market, civil society � 71 � ... 68 �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참고문헌 강형철 (2004).《공영방송론》 서? ?: 나남 김기태 (1995) 한국? ?? 언론수용자 운동.《언론과 수용자》 서? ?: 한국? ??론연구원 김종엽 편 (2009).《87년 체제? ?: 민주화 이후 한국? ??회의 인식과 새 전망》 서? ?: 창비... 서? ?: 문학 과지성사 �최초 투고일 : 2011 04 30 �1차 심사일 : 2011 05 16~ 05 30 � ‘부분 수정 후 이번호 게재’판정일 : 2011 06 02 �2차 심사일 : 2011 06 14 ~ 06 18 �게재 확정일 : 2011 06 20 � 70 �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 연대활동 자료원 : 김기태(1995 180쪽) � 62 � 2차 목표 (최종적 목표) �방송민주? ?: 방송의 공익성∙ 공정성 실현, 수용자 중심의 방송 실현 � 사회민주? ?: 정치적 민주화 실현 ? ?한국 텔레비전 50년의 정치와 경제 :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 조항제∙박홍원┃ 5) 민주화∙자유화기(1987~2000) 한국? ?? 민주화를

Ngày đăng: 20/10/20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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