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rang chủ
  2. » Luận Văn - Báo Cáo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강내희의 ‘문화정치경제’와 ‘문화사회’에 대한 비판적 독해

26 2 0

Đang tải... (xem toàn văn)

Tài liệu hạn chế xem trước, để xem đầy đủ mời bạn chọn Tải xuống

THÔNG TIN TÀI LIỆU

Thông tin cơ bản

Định dạng
Số trang 26
Dung lượng 647,53 KB

Nội dung

마르크스주의 연구 특집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강내희의 ‘문화정치경제’와 ‘문화사회’에 대한 비판적 독해 박도영* 18)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강내희, 2014)의 이론적 기여는 신자유주의 금융화라는 자본주의 축적구조의 정치경제적 변화가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시간 과 공간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결국 사람들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 가를 살펴본 것에 있다 이러한 변화한 자본주의적 일상의 생생한 재현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결국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함께 보려고 했던, 다시 말해 경제의 변화를 문화와 정치의 변화와 연결시켜 보려고 했던 통섭적 노력에서 나온다 한편 강내희 의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은 많은 면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자본=네이션=스 테이트와 유사하지만 후자가 자본주의사회구성체의 거시적 구조에 주목하고 있는 반면, 전자는 사회의 미시적 복잡성을 부각시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아가 가라 타니의 유토피아인 교환양식D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구 조의 필연적 효과(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사유되는 반면, 강내희의 유토피아인 ‘문 화사회’는 아직은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이 행하는 켜켜이 쌓인 미시적 분석 의 효과로서 제시되지는 않는다 주요 용어: 강내희, 신자유주의 금융화, 문화정치경제, 문화사회, 가라타니 고진, 자본=네이션=스테이트, 교환양식D * 한국교원대학교, pardy@knue.ac.kr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85 머리말 이 글은 애초에 강내희의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문화과학사, 2014)에 대한 리뷰를 쓰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중간에 글의 방향을 조금 바꾸게 되었는데, 나로서는 그 책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신자유주의, 금융 화, 금융파생상품, 기획금융보다는 그것의 효과로서의 ‘문화정치경제’의 변화 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자유주의 금융 화 그 자체에 대한 서술보다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일상성, 즉 시간과 공간과 주체형성에 가져온 변화에 더 눈이 갔다 그래서 온전히 한 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보다는 그의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과, 그 문제설정이 신자 유주의적 금융화의 효과로서 포착한 시공간 및 주체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 로 그가 ‘문화사회’라고 명명한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내가 그의 책의 전반부에 관심이 덜했던 것은 결코 그 부분이 진부하다거나 의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경제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모 대학 부동산금융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금융파생상품이나 기획금융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인 문학자인 그가 그 전반부의 서술에 기울였을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설사 경제학 전공 자라도 부동산과 금융 분야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분야의 전공자라면 반드시 일 독할 것을 권한다 그는 어떤 경제학자나 재무관리 전공 경영학자보다도 흥미 진진하게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그 핵심적 수단인 금융파생상품, 기획금융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길고 진지한 외도가 의미 있는 것은 그가 어떤 전문가 못지 않게 금융화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금융화에 대한 분석 을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라면 결코 하지 않았거나 하기 어려웠을 영역으로 끌 고 갔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결국 사람들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살펴본다 그 결과 그는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일상과 그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감에 대한 ‘문화정치경제’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이 일상을 ‘자본 86 2015년 제12권 제2호 의 유토피아, 민중의 디스토피아’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함께 상상해 볼 것을 우리에게 권유하고 있다 결국 내가 이 글에서 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그가 분석의 전략/구조로서 제시한 문제설정의 ‘유효성’이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유효한’이라는 말을 ‘과 학적인’이라는 말의 대체어로 사용했는데 ‘유효한’이라는 말은 ‘과학적인’이라 는 말보다는 훨씬 넉넉함이 있다 예컨대 칸트적 의미에서 ‘규제적 이념’은 결 코 ‘과학적인’ 것은 아니나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 강내희는 신자유주의를 오늘날의 지배적인 자본주의 축적구조로, 금융화를 그 핵심적 전략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문화와 정치와 경 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여기서 일단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는 ‘문제설정’이다 그는 이 문제설정을 ‘문화정치경제’의 문제 설정으로 명명했다 그가 말하는 ‘문화정치경제’는 일단 “3대 사회적 실천 층위에 해당하는 문화 와 정치와 경제가 복합적인 방식으로 빚어내는 관계망을 가리키는 말”(16)1)로 서 제시된다 그런데 그는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사회적 실천 전체를 포괄한다 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문화와 정치와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할 뿐이 다.2)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복합적으로 빚어내는 관계양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둘씩 짝지으면 문화정치, 정치문화, 문화경제, 경제문화, 정치경제, 경 제정치라는 6개의 복합적인 관계양상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여섯 가지 중 문화정치, 문화경제, 정치경제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관심을 한정한다 1) 본문 중 출처를 표시하지 않은 면수 표시는 모두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 경제󰡕(강내희, 2014)의 면수를 가리킨다 2) 17쪽, 각주 1) 참조 그는 ‘문화정치경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중요한 사회적 실천으 로 환경과 기술을 들고 있다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87 그리고 그는 이 세 가지 양상을 나머지 하나의 층위와 연결시켜 각각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 문화적 정치경제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겠다고 말하 고 있다 그의 겸손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말하는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이란 복합적 전체로서의 사회 그 자체를 온전히 겨냥하고 있다기보다 는 그동안 그가 수행해온 “비판적 문화연구에 대한 반성의 일환”(33)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 ‘문화정치경제’가 토대-상부구조론이라 는 전통적인 사회구성체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사회적 실천들의 3심급 론’이며, “알뛰세르의 사회적 실천들의 심급론과 재생산 이론의 계승 및 변형” 으로서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욕망이론을 비판적으로 절합해 ‘문화정치적-문 화경제적 실천’으로 재개념화”해서 구축한 사회구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속 한다는 심광현의 평가를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문제설정이 새로운 사회구성체 론으로서 제출된 것임을 부인하지도 않는다(29) 굳이 말하자면 이러한 강내희의 전략은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려는 전략’처 럼 보인다 이 전략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실천들 중 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가장 핵심적인 세 개의 심급이어야 할 것이고, 문화정치, 정치문화, 문 화경제, 경제문화, 정치경제, 경제정치라는 6개의 관계양상 중 문화정치, 문화 경제, 정치경제가 가장 핵심적인 양상이어서 문화정치경제를 복합적으로 살펴 보는 것에 의해 사실상 사회구성 ‘전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렇지만 그는 ‘오버’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가장 의미 있는 ‘부분’에 대해 말하 고 있다고 말하기로 한 듯하다 아무튼 그의 이러한 ‘문화정치경제’는 많은 면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자본= 네이션=스테이트를 닮았다 경제는 자본에, 정치는 스테이트에 대응한다 가 라타니는 󰡔네이션과 미학󰡕(2009)에서 자본(시민사회)=네이션=스테이트라는 ‘보로메오의 매듭’을 감성=상상력=오성이라는 칸트의 동형의 매듭과 비교하 면서, 역사적으로 네이션의 등장이 프랑스혁명에서 발원한 어소시에이션이라 는 상상력을 실체화=미학화한 결과라고 말한다.3) 문화적 실천이라는 심급과 3) 가라타니는 미학화라는 말을 감성과 이성 혹은 오성을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태도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칸트는 감성과 이성 혹은 오성은 상상력의 매개를 통해서 88 2015년 제12권 제2호 상상력의 실체화=미학화의 결과로서 탄생한 네이션이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것 이 무리가 아니라면 자본주의의 문화정치경제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유 사성은 더욱 더 커 보인다 그러나 문화정치경제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사회구성체론으로서의 유사성은 거기까지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알뛰세르의 심급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알뛰세 르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최종심급’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이것은 경제적 심급을 뛰어넘은 마오이스트적인 정치적 실천을 사주하기 위해서였다” 라고 주석을 달고 있다(가라타니 고진, 2012: 436) 또한 그는 “‘상부구조의 상대 적 자립성’을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예를 들어 국가나 네이션이란 역사적으로 형성된 표상의 산물이어서 계몽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사고로 귀결될 뿐”이 며, 따라서 “그것은 국가나 네이션이 어떤 종류의 하부구조에서 기인하고 있다 는 것, 바로 그 때문에 능동적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같은 책, 34) 그래서 가라타니는 토대-상부구조라는 도식을 버리고 토 대, 즉 하부구조만으로 사회구성체를 설명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생산 양식 대신 교환양식이라는 하부구조를 발견했다 교환양식A는 호혜적 교환, 교 환양식B는 약탈과 재분배, 교환양식C는 상품교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제적 이념으로 존재하는 교환양식D 가라타니는 󰡔세계사의 구조󰡕에서 이러한 교환 양식들의 결합양상의 변화로 사회구성체와 세계사의 변화를 설명했다 교환양 식A가 지배적인 씨족사회의 미니세계시스템, 교환양식B가 지배적인 국가사회 와 세계=제국, 교환양식C가 지배적인 자본=네이션=스테이트와 그것들로 구 성된 세계=경제(근대세계시스템) 그리고 교환양식D가 지배적인 유토피아로서 의 세계공화국.4) 강내희가 스스로 사회구성체론 혹은 가라타니가 ‘세계사의 구조’라고 명명 만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감성의 근저에 이성의 존재를 전재하거나 그 반대 의 경우를 비판했다 말하자면 “헤겔은 철학을 예술 위에 두었는데, 그때 이미 철 학 자체가 ‘미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2009: 42 참조) 4) 󰡔세계사의 구조󰡕(가라타니 고진, 2012)에 대한 가라타니 자신의 개략적인 소개는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가라타니 고진, 2014)의 첫머리에 있는 개관을 참조 하라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89 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제시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기에 강내희의 문화정치 경제와 가라타니의 세계사의 구조를 일대 일로 비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 다 그보다는 강내희의 문화정치경제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라는 자본주의의 현재적 국면이 사회를(보다 구체적으로 시공간과 주체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 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그것과 가라타니의 자본=네이션=스테이트 를 좀 더 자세히 비교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가라타니는 󰡔세계사의 구조󰡕의 말미인 제4부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재적 단계에 대해 분석한다 강내희와 마찬가지로 가라타니 역시 세계자본주 의의 현재적 단계를 신자유주의로,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하의 금융적 팽창단계 로 구분한다 이러한 시기구분은 사실 가라타니에게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월 러스틴(I Wallerstein), 아리기(G Arrrighi) 등 브로델 학파에서 연유한다 특히 아 리기는 자본순환을 M-C-M' 순환과 M-M' 순환으로 구분하고 생산과 무역을 통 해 축적이 가능할 때 자본은 전자에 주력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이윤을 얻을 수 없는 경우 후자의 확대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가라타니는 일찍이 󰡔근대문 학의 종언󰡕(2005, 번역본은 2006)에서부터 이러한 관점을 견지해왔다 그렇다면 강내희와 가라타니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내희는 과거의 금융적 팽창단계들과 구분되는 현재의 금융적 팽창의 특징을 그 대표적 수단인 금융파생상품과 기 획금융의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이런 미시적 분석은 현재 진행 중인 자본주의 적 일상성의 미시적 변화를 포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더욱이 그의 ‘문화정치경제’적 문제설정은 금융화가 자본주의적 일상성에 미친 변화를 다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는 ‘문화적 정치경제’라는 프 리즘을 통해서는 주로 국가와 자본과 노동 간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그 변화에 영향을 미친 문화적 과정을 살펴본다 한편 ‘경제적 문화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는 문화의 정치화와 정치의 문화화가 서로 결합해서 형성되는 문화정치 와 그것과 경제적 실천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문화의 정치화는 “의미, 가치, 규 범, 정체성 등의 문화적 문제가 정치적인 권력관계의 문제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 정치의 문화화는 “정치경제적 문제, 다시 말해서 국가와 자본과 노동의 갈등 및 모순 문제, 여타 다양한 사회적 권력관계 문제를 표현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과정”(184)을 가리킨다 여기서 그가 이야기하는 문화의 정 90 2015년 제12권 제2호 치화와 정치의 문화화는 베냐민(W Benjamin)이 이야기한 미학의 정치화와 정 치의 미학화(심미화)와 동일한 과정이다.5) 베냐민은 사회적 갈등을 미학적(심미 적) 표현을 통해 해결하려 한 파시즘의 전략을 정치의 미학화(심미화)의 예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 ‘미학의 정치화’를 제시했다(20: 185-186) 마지막으로 정치적 문화경제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는 문화와 경제는 어떤 식으 로 융합해 문화경제를 형성하고 또 어떤 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게 되는가를 분석한다 이는 지젝이 지적한 미학의 상품화와 상품의 미학화(심미화) 경향을 포괄하며(20), 이를 문화와 경제라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조망하는 것일 테다 우선 사회(적 실천들)의 변화를 이처럼 문화적 정치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것은 가라타니식으로 말하면 자본= 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를 자본=스테이트의 변화와 네이션의 관계, 네이션=스테이트의 변화와 자본의 관계, 자본=네이션의 변화와 스테이트의 관계로 나누어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순환은 확실히 구조의 복 잡성을 세밀히 드러내면서 사회적 실천들의 미시적 효과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이러한 순환적 관점은 마치 지젝의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이나 데리다의 차연(diffeˊ rance)처럼 대상을 결코 명확하게 현전하 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조의 확정(적 인식)을 지연시키는 것은 아닌가? 실제로 강내희의 텍스트는 서론에 해당하는 1장을 제외한 2장부터 9장에 이르기까지 의 모든 장에서 이런 순환적 분석을 수행하는데, 이런 분석이 반복적으로 거듭 될수록 대상의 미시적 복잡성은 증가하는 반면 대상의 거시적 구조는 소멸하 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반면에 문학평론가 시절 분명히 포스트구조주의 5) 강내희는 미학화 대신 심미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젝이 이야기한 ‘미학의 상품화와 상품의 미학화’도 미학화 대신 심미화라고 옮긴다 그럼에도 굳 이 필자가 정치의 미학화(심미화)라고 쓴 이유는 앞에서 잠시 언급한 가라타니 고 진의 ‘실체화=미학화’라는 표현을 고려하고 이 두 의미를 비교하기 위해서다 한 편 그는 이 미학화(심미화)가 그가 이야기하는 문화화와 동일한 과정을 가리킨다 고 말한다 다만 그는 “‘심미화’가 아직도 근대적인 예술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면, ‘문화화’는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이르러, 근대적 예술이 지배문화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대중문화가 지배문화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변동을 가리킨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20쪽, 각주 2) 참조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91 에 경도되었던 가라타니는 이러한 미시적 담론에 대한 회의 때문에 다시 칸트 로(말하자면 다시 구조주의로) 회귀했다.6) 한편 자본=네이션=스테이트로 사회구성을 파악하는 것과 문화정치경제로 파악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일단 문화와 네이션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가라타니는 󰡔네이션과 미학󰡕에서 네이션을 미학화와 연결했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네 이션과 미학󰡕에서의 논의를 반복하면서 보다 분명하게 제시한다 가라타니는 칸트의 감성=상상력=오성이라는 보로메오의 매듭을 문학이라는 예술작품의 탄생에 견주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자본제사회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 각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평등하다 그렇다면 오성과 감성의 분열이 실제 로 있는 것이다 그런 분열을 상상력으로 초월하려고 할 때, 문학작품이 태어난 다 그와 같은 문학에 의한 현실초월이 ‘상상적’인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 하지 않을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2012: 318) 곧 이어 가라타니는 말한다 네이션도 그와 같은 의미에서 ‘상상적’인 공동체이다 네이션에서는 현실의 자본주의 경제가 가져오는 격차, 자유와 평등의 결여가 상상적으로 보전되고 해 소되고 있다 또 네이션에서는 지배장치인 국가와는 다른 호수적 공동체가 상상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션은 평등주의적인 요구이고, 국가나 자본에의 비 판과 항의(protest)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네이션은 자본=국가가 초래 하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그것이 파탄이 나는 것을 막는다(가라타 니 고진, 2012: 318)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매듭이 네이션이라는 형 태를 띤 상상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이해할 때 이 매듭이 지양 될 가능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문학작품의 존재가 한편으로는 자본 주의사회에서 감성과 오성의 분열을 상상력으로 초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6) 이에 대해서는 졸고 「트랜스크리틱: 도덕적 명령과 진리에 대한 강박 사이」(박도 영, 2011)를 보라 92 2015년 제12권 제2호 그것이 부단히 상상력에 의한 초월이라는 것을 일깨워줌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타개하려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7) 그러나 낭만파 철학자들, 대표적으로 헤겔에게는 감성과 오성(이성)이 처음부터 종합되어 있다 즉, 국가 적 이성은 풍토, 언어, 민족이라는 감성적인 것 속에 원래 뿌리박고 있는 것으 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네이션은 상상력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의 미학화”(가라타니 고진, 2012: 318)(강내희 식으로 이야기하면 정치의 문화화 혹은 심미화)의 결과로서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강내희가 말하는 “문화의 정치화를 진보적 기획으로, 정치의 문화화를 보수적 기획으로 보는 인식”(185)의 근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문화의 정치화란 가라타니식으로 말하자면 네이션에 의한 자본제사회의 통 합이 상상의 호혜적 공동체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함으로써 자본=국가가 초래하는 부자유와 불평등을 직시하게 하려는 기획이라면(이 말 이 네이션을 계몽으로 해소하려는 기획이라고 오해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정치의 문화화 또는 심미화는 네이션이라는 호혜적 공동체가 사실상 국가의 속성임을 주장하는 기획인 것이다 이처럼 강내희의 문화정치 혹은 경제적 문화정치는 가라타니에게는 네이션이라는 매듭을 둘러싼 투쟁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강내희가 굳이 ‘문화적 실천’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강내희의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을 가라타니의 자본=네이 션=스테이트라는 매듭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거 론된 많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채 거론되지 않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 한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그의 유토피아론을 살펴보는 4절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3장에서는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이 자본주의적 일상의 미시적 변화 를 어떻게 포착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7) 아마도 가라타니는 이러한 문학의 양면성에서 근대문학의 존재이유를 찾았을 것 이다 다른 한편 가라타니가 선언한 ‘근대문학의 종언’은 ‘문학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가라타니 고진, 2006: 43-86 참조)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93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미시적 변화와 ‘문화정치경제’ 머리말에서 나는 강내희(2014)의 이론적 기여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라는 자본주의 축적구조의 정치경제적 변화 그 자체에 대한 분석 그 자체보다는 그 것이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결국 사람들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살펴본” 것에 있다고 썼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의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이 “구조의 복잡성을 세밀하게 드러내면서 사 회적 실천들의 미시적 효과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 편 “이런 분석이 반복적으로 거듭될수록 대상의 미시적 복잡성은 증가하는 반 면 대상의 거시적 구조는 소멸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라고 지적했다 강내희(2014)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책의 6, 7, 8장은 각각 시간의 금융화, 공간 의 금융화, 주체형성의 금융화를 다루고 있으면서 각 장은, 2장 이후 이 책의 모든 장이 그러하듯, 각각의 주제를 소상히 다룬 다음 다시 이의 ‘문화정치경 제’적 의미를 분석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장들에서는 내가 강 내희의 이론적 기여라고 생각하는 바와 함께 동시에 그의 ‘문화정치경제’의 장 단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나는 이 장에서 우선 내가 강내희(2014)의 이론적 기 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소개하고, 다시 재차 그의 ‘문화정치경제’의 장 단점을 논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1) 자본주의의 변화한 일상성 강내희(2014)의 6, 7, 8장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 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결국 사람들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 가”를 효과적으로 분석해 보여준다 이하에서 우선 강내희의 논의를 따라가며 이를 음미해보도록 하자 먼저 금융화는 일상의 시간경험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 강내희는 C-M-C, M-C-M', M-M'이라는 순환은 각각 자연적 시간, 기계적 시간, 가상적 시간에 대응한다고 말한다 C-M-C 순환은 사용가치, 즉 욕구의 충족을 목표로 하는데, “사용가치의 생산과 소비는 자연적 시간의 한계 속에 이루어진다”(341) 한편 94 2015년 제12권 제2호 공간들이었다면, 역사적 공간은 이 공간으로부터 나온 ‘상대화된 공간’으로서 중세 유럽 도시로 대표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 역사적 공간을 해체하 며 등장한 것이 ‘추상공간’이다(395-396쪽 참조) 말하자면 ‘추상공간’은 자본주 의적 도시 공간인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화는 이 자본주의적 도시 공간을 어떻 게 바꾸어 놓았나? 강내희는 “수정자유주의 시대 추상공간에서 복지국가와 관 리형 도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추상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금융 화의 논리요, 그에 따라 구축된 경쟁적 기업가형 도시”라고 말한다(397) 금융화가 도시공간을 관리형 도시에서 기업가형 도시로 쇄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부동산의 증권화(금융화)를 계기로 탄생한 자산담보부 증권, 리츠, 부동산 펀드 등과 같은 다양한 금융적 매개의 등장과 이를 토대로 작동하는 기획금융이다 이러한 부동산의 금융화를 통한 자본의 집중, 그리고 현재가치화한 미래(예상)수익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동원하는 기획금융은 ‘건조환경 시장이 지구적 규모로 조직’(392)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그 결과 거대한 초고층 건물군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도시경관이 창출된다(‘도시의 경관 화’) 한편 전자본주의적인 풍경과 구분되는 자본주의적 경관은 그 자체가 교환 가치를 강조하는 상품이므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태도를 갖는데, 최근 금융화과 정에서 그것은 거대한 유리벽과 같이 유달리 표면성 또는 ‘안면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399-406) 한편 “안면성이 강조되어 일견 개방적이고 투명한 오늘날의 도시경관”은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대 도시민에게는 아주 흔한 시각 적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내부로의 진입, 즉 사용가치의 실제적 사용”(413)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공간의 양극화를 심화한다 마지막으로 금융화가 초래한 시공간의 변화는 주체형성에 어떤 변화를 초래 하였나? 다시 말해 “오늘날 특유한 시공간의 생산은 어떤 주체형태를 요청하 며, 새로운 인간형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 것일까?”(435) 우선 수정자유주의시대 에는 금융자유화에 비판적이었던 케인스의 영향하에 M-C-M' 순환이 M-M' 순 환보다 우위를 점하였고 따라서 생산중심의 실물경제가 노동과 자본과 국가 사이의 타협의 물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체형성은 푸코가 말 한 근대적 훈육사회의 작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개인들을 감옥, 군대, 공 장, 병원, 학교 등의 ‘감금장치’에 배치하고 그들의 신체에 일정한 습속과 능력 96 2015년 제12권 제2호 을 각인시키며 주체로 주조해내는 방식”(439)이 지배한다 반면 금융화로 M-M' 순환이 지배적이게 되면 기준이 되는 자본순환의 주기가 짧아지고 이에 따라 생산의 장기적 안정성보다는 단기실적주의에 경도되면서 이 실적의 개선을 방 해하는 안정적인 고용형태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 화’가 그것이다 그 결과 “개인들을 특정 사회제도 또는 장소에 고정적으로 소 속시키거나 감금하기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장소나 제도를 넘나들게 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축적에 일관되게 기여하도록”(440) 주체형성 방식이 변화한다 들 뢰즈가 푸코의 ‘훈육사회’와 비교하여 ‘통제사회’라고 부른 것이 그런 사회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전자가 훈육적 규율에 기초한다면 후자는 자율적 규율 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들의 ‘순현재가치’를 측정하도록 만드 는 관리회계가 조직 규율의 원리가 되고, “이런 변화는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과 궤를 함께한다”(441)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자신의 인재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계산 가능 한 주체”이며 동시에 외부의 권위로부터의 강압에 순응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자아의 테크놀로지”에 의해 추동되는 주체이다(443) 이러한 변화를 초래한 금융화는 자산의 금융화와 부채의 자산 화를 통해 ‘자기계발하는 주체’를 투자자 주체이자 부채자 주체이게 만든다 “투자자 주체가 된다는 것은 삶의 위험을 개인화한다는 것이다”(461) 즉, 과거 에는 사회적 책임으로 간주되었던 위험관리가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 되게 된다 한편 시간의 금융화는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삶을 더욱 바쁘게 하고, 공간의 금융화는 그 주체들로 하여금 안면성이 강화된 경관을 거울 또는 카메 라로 간주하고 “그곳을 일상의 무대로 삼아 살아가는 배우”가 되게 한다(479)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만들어낸 시공간은 마치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유토피아일 뿐이다 유토피아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심미적인, 너무나 심미적인’ 것이다 유토피아의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보다도 우리 눈앞에 웅장하 게 펼쳐지는 도시경관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축적된 거대한 사회적 부가 마치 건조환경으로 탈바꿈한 듯, 세계 각지는 도시화되었고, 도처에 초고층 건물들이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97 즐비하다 이렇게 조성된 경관에서 대중은 꽤나 유복하고 안락해 보인다 도시경 관 속을 사람들이 여유만만하게 그리고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 그것은 일 견 유토피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곳곳이 스펙터클이요, 축제가 아닌가 삶의 리듬도 그리하여 즐겁고 쾌적한 것처럼만 보인다 그 리듬은 물결이 되어, 신상 품 출시와 함께 물신적 이미지와 기호가 경관의 바다로 거듭 밀려올 때마다 출렁 인다 사람들이 즐거운 것 같은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이런 파고를 회피하지 않고 잘 타고 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적인 주체, 투 자자 주체는 오늘날 거듭 다가오는 위험을 수단 좋게 관리하며 모험 가득 찬 멋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것만 같다 자본의 변증법이 손길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이곳 에서 자본은 드디어 자신의 꿈을 실현한 것처럼 보인다 …… 이 유토피아는 자본 에게는 너무나 멋진 신세계다(510-511) 자본의 유토피아에 대항하는 새로운 유토피아의 모색에 대한 논의는 다음 장으로 넘기고, 여기서는 일단 이 묘사에 주목하자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이 인용문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주 멋들어진, 화려한 문장들 만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한 자본주의의 일상을 화보처럼 담아 낸 이 ‘심미적’ 묘사는 이 묘사 이전의 500페이지가 오직 이 묘사를 위해 존재 하는 듯 ‘정치적 의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의미’들은 곧바로 묘사된 일상의 화보를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다면 이런 ‘심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일상의 분석을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일까? 이 글을 지금까지 진지하게 읽어온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채 고 있겠지만 그것은 현 단계의 금융화를 그 이전 단계의 금융화8)와 구분해주 는 금융적 수단들에 대한 ‘경제적’ 분석을 정치적 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한 것 이었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금융파생상품과 기획금융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가 미래가치를 현재화하는 회계학적 패러다임에 기초한다는 것이 8) 조반니 아리기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역사상 3번의 헤게모니국가(네덜란드, 영국, 미국)가 등장한 시기가 있었고, 산업적 팽창의 단계가 끝난 각 시기의 후반부는 항상 금융적 팽창의 단계였다(아리기, 2008: 1장 참조) 98 2015년 제12권 제2호 고, 이 특징이 현 시기 금융화 단계의 시공간과 주체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거나, 정치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거나, 혹은 경제적인 현상만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하기 어려운 생생한 일상의 재현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결국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함께 보려고 했던, 경제의 변화를 문화와 정치의 변화와 연결시켜 보려고 했던 통섭적인 노 력에서 나온다 적어도 나에게는 강내희의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은 이 세 실천의 영역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명제의 수준에서 이미 충분히 유효했 다 그래서 정작 각 장 말미의 ‘문화정치경제’라는 제목을 단 절에서 문화적 정치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를 순환적으로 살펴보는 부분은 마치 사족처럼 느껴진다 분석은 이미 끝났는데 ‘왼손은 다만 거들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문화정치경제’의 유효성 앞서 살펴본 것처럼 강내희는 책의 6, 7, 8장에 걸쳐 금융화가 일상의 시간 경험과 공간경험, 그리고 주체형성에 미친 변화를 구분해 분석한다 우선 저자 자신도 지적하듯이 시간인식과 공간인식은 서로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또한 시공간의 인식은 주체형성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내가 경험하는 시공간 속의 ‘나’이기 때문이다 강내희는 이러한 점을 잘 알면 서도 “논의의 편의상”(315) 이를 따로 구분해 논한다 그런데 이런 ‘논의의 전 략’은 복잡한 전체를 논의하는 저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략이므로 특별하다 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화정치경제’라는 하나의 전체를 다면화해 문화적 정치 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로 구분해 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겹쳐질 때 대상의 미시적 복잡성은 급속히 증가한다 단순히 말하면 하나의 대상을 3등분해 그것을 각각 3개의 프리즘으 로 보면 3×3의 매트릭스가 생긴다 책 전체를 생각하면 이러한 미시적 복잡성 의 증가는 더 심하게 증폭된다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이 이 장의 주된 분석대상인 6, 7, 8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요약해보면 과 같다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99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자본주의적 일상성에 미친 변화에 대한 ‘문화정치경제’적 분석 정치경제적 변화 신자유주의 금융화 현 금융화 단계의 특징 금융파생상품, 기획금융 작동원리 미래가치 할인(현재가치화) 일상성의 구조 공간 주체형성 경관화·안면화 자기계발적 주체 ․금융자본의 자유 ․기업가형 도시 ․대금이월자 주체 ․개발지지자 주체 ․소유권 담론 ․신개발주의 담론 대중문화 속도감 ․인재로 호명 ․소비자 주체 투자자 주체 채무자 주체 ․경영 담론 경제적 문화정치 ․즉시성의 미학 ․스펙터클 ․정치의 심미화 ․투자자 주체 ․미학적 쇄신(개혁) ․자본회전 단축 ․단기 실적주의 ․투자자 주체 =개인적 주체 ․취향과 스타일 스타일의 정치 ․금융화 = 투자자화 = 채무자화 정치적 문화경제 ․상품의 심미화 ․문화의 상품화 ․즉시성의 미학 소비의 가속화 ․정치의 연예화 문화적 정치경제 문화 정치 경제 시간 가상적 시간 ․이미지 주거의 ․공간의 공간의 ․정치적 강조 ․문화자본 투자 경제화 ․투자자 주체의 탈맥락화 심미화 전 지구화 ․경찰국가화 보수화 2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문화정치경제’적 문제설정은 금융화가 자 본주의적 일상성에 미친 변화를 다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주위를 환기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보자 그는 ‘문화적 정치경제’라는 프리즘 을 통해서는 주로 국가와 자본과 노동 간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그 변화에 영향 을 미친 문화적 과정을 살펴본다 한편 ‘경제적 문화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는 문화의 정치화와 정치의 문화화가 서로 결합해서 형성되는 문화정치와 그것과 경제적 실천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문화경제라는 프 리즘을 통해서는 문화와 경제는 어떤 식으로 융합해 문화경제를 형성하고 또 100 2015년 제12권 제2호 어떤 식으로 정치와 관계를 맺게 되는가를 분석한다 이는 미학의 상품화와 상 품의 미학화(심미화) 경향을 포괄하며, 이를 문화와 경제라는 보다 넓은 의미에 서 조망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은 마르크스 의 토대-상부구조론에 대한 비판적 극복이라는 의미에서 새로운 사회구성체론 으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그렇다면 사회구성의 변화에 대한 ‘미시적인, 너무나 미시적인’ 다면적 분석은 사회구성의 거시적 변화에 대해 어떤 함의를 제시하 고 있는가? 다르게 묻는다면 ‘문화정치경제’는 사회구성에 대한 이처럼 켜켜이 쌓인 미시적 분석의 효과로서 사회구성의 거시적 변화를 말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의 ‘유효성’에 대한 질문이 된다 ‘문화정치경제’와 ‘문화사회’ 다시 가라타니 고진으로 돌아가 보자 헤겔을 포함한 낭만주의자들에게 네 이션은 이미 국가=자본이었던 국가의 미학화(심미화)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것, 따라서 그 자체가 국가=자본의 내재적 속성이며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가라타니는 네이션이 호혜적 교환이라는 고유한 토대를 갖는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자본이 네이션의 계기를 획득 함으로써 자본=네이션=스테이트는 매우 강고해졌지만 이런 강고함이 유지되 기 위해서는 국가=자본이 끊임없이 확대하는 불평등과 배제가 네이션이라는 계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미학화(심미화)되어야 한다 이 미학화의 방식이란 국 가=자본인 국가가 네이션=국가로서 등장해 재분배를 통해 이러한 불평등과 배제를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9)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가라타니가 제 9) 우리는 이러한 ‘국가의 미학화’로서의 네이션을 우리의 현대사를 통해 지겹게 봐 왔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선언이 ‘국민교육헌장’이며, 10월 유신이 다 파시즘은 이런 국가의 미학화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독일 독자를 경계하여 한 말을 패러디해 반박하고 싶다 “이건 바로 현재 당신이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1 출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은 새로운 상상적 공동체, 역사적으로는 예컨대 프랑 스혁명의 과정에서처럼 드물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을 뿐이지만, 국가에 의해 호혜적 공동체가 해체된 이래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상상적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상상력은 국가=자본의 지배가 낳은 불평등과 배제가 단지 미학적 으로만 극복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그것의 진정한 극복을 꿈꾼다 이 상상력의 자리는 칸트가 말한 규제적 이념의 자리이며, 마르크스가 말한 코뮤니즘의 자 리이며, 데리다가 말한 ‘도래할 민주주의’의 자리이며, 가라타니가 말하는 교환 양식D(혹은 초월적 가상 X)의 자리이며, 말하자면 말의 의미 그대로 ‘현실에 존 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자리이다 따라서 모든 미래사회의 기획은 기본적으 로 상상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주의이다 강내희(2014)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만하임, 심광현, 마르크스와 엥겔스, 월 러스틴, 하비 등의 논의를 통해서”(525) ‘유효한 유토피아주의’라는 관점을 도 출하고, 이 유토피아적 기획을 ‘문화사회’라고 명명했다 먼저 그가 도출한 ‘유 효한 유토피아주의’라는 관점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강내희는 이 ‘유효한 유토피아주의’라는 용어를 “유효하지 않은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로 볼 수 없다” 라고 한 만하임의 말에서 착안했다 만하임이 유효한 유토피아라고 본 것은 “행동으로 전환되어 당시의 지배적 질서를 부분적으로나 전면적으로 혁파하려 는, 현실을 초월하려는 경향들”(521)이다 그러나 한편 강내희의 ‘유효한 유토 피아주의’는 이러한 만하임의 ‘행동주의적’ 유토피아주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유토피아를 대립하는 것으로 본 마르크스-엥겔스의 관점을 기 각하고 과학과 유토피아의 결합을 주장한 심광현의 ‘과학적 유토피아주의’(이 는 다시 월러스틴의 유토피스틱스를 수용한 것이다)(520), 현실사회주의(좌파 유토 피아주의)와 신자유주의(우파 유토피아주의)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할 것을 주장 하는 하비의 ‘변증법적 유토피아주의’(524)를 모두 결합한 것으로서 제시된다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강내희가 심광현의 ‘과학적 유토피아주의’를 수용 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1847)에서 행한 유토피아주의비판을 재해석하는 부분이다 우선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 비판의 구절을 겪고 있는 일이라고.” 102 2015년 제12권 제2호 강내희(2014)에서 재인용해보자 이들 이론가들은 억압받는 계급들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체계들을 임시변통해 내고 재생(regenerating) 과학을 찾아다니는 유토피아주의들일 뿐이다 그러나 역 사가 전진하고 그와 함께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더 명확한 윤곽을 드러내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그들 마음속에서 과학을 찾을 필요가 없고, 눈앞에 벌어지 는 것만 보기만 하면 되고, 그 대변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과학을 추구하 며 체계들을 만들어 내기만 하는 한, 투쟁의 초입부에 있는 한, 그들은 빈곤 속에 서 오직 빈곤만 볼 뿐 낡은 사회를 타도할 그것의 혁명적인 전복적 측면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측면이 보이는 순간부터, 역사적 운동에 의해서 그리고 이 운동 과 의식적으로 제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과학은 교조적임을 멈추고 혁명적이 된 다(521쪽에서 재인용) 이 인용문으로부터 마르크스가 과학과 유토피아주의를 대립항으로 놓지 않 았다는 해석을 도출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가 “마르크스가 19 세기 사회주의자들, 코뮌주의자들을 비판한 것은 그들이 과학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체계를 만들어내기만” 하고, 실증주의적으로 “눈앞에 벌 어지는 것을 보기만”(강조는 강내희)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522)라고 한 부분 에는 알아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오독이 존재한다 앞의 인용문에서 마르크스 는 “체계를 만들어내기만” 하지 말고,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기만” 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오독으로부터 마르크스가 혁명적 과학과 교 조적 과학이라고 칭한 것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이어진다 마르크스가 혁명적 과학이라고 한 것은 현실에서 “낡은 사회를 타도할 그것의 혁명적인 전복적 측면”을 발견하고(이것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라’는 마르크스의 말의 의미이 다), “이 운동과 의식적으로 제휴”하는 과학인 반면, 마르크스가 교조적 과학(여 기서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과학을 가리킨다)이라고 한 것은 “마음속에서 과학 을 찾고”, “과학을 추구하며 체계를 만들어내기만” 하면서 정작 빈곤이라는 현 실 속에서 “낡은 사회를 타도할 그것의 혁명적 전복적 측면”을 보지 않는, ‘보 고도 보지 못하는’,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는’ 과학이다 그러나 강내희는 “혁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3 명적 과학과 교조적 과학의 차이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유토피아 주의에 대한 태도다”(522)라고 말함으로써 마르크스가 유토피아주의라고 칭한 “교조적 과학”에게서 유토피아주의를 빼앗아 “혁명적 과학”에게 넘겨준다 이 제 “혁명적 과학”에서 “과학적 유토피아주의”가 된 이른바 “유효한 유토피아 주의”는 그것이 ‘유효한’ 유토피아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체계를 지어내 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그것(체계)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 이 구비되어야 한다”(523)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혁명적 과학”은 그 조건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으로 들었지만 “역사적으로 이 투쟁 은 일어났다고 해도 산발적이었고, 또 대체로는 개량적인 형태로 진행되었을 뿐”이므로 “아직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말한다(523) 말하자면 강내희가 말하는 ‘유효한 유토피아주의’는 “과학을 추구하며 체계 를 만들어 내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 “체계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하 는 유토피아주의이다 반면 마르크스를 여전히 유토피아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 다면 그것은 마르크스가 ‘현 상태를 지양’한 ‘현실에는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을 꿈꾸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주의가 혁명적 과학이라 고 주장되는 것은 마르크스의 과학이 머릿속에서 체계를 만들어내는 교조적 과학과 달리 그 현 상태 속에서 “낡은 사회를 타도할 그것의 혁명적인 전복적 측면을 보는”, 나아가 그러한 “역사적 운동에 의해서 그리고 이 운동과 의식적 으로 제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려 했던 김수영처럼10) 마르크스는 현실의 “전복적 측면”을 현실에서 발 견할 것을 요구했고, 그러한 전복적 측면과 연대하는 과학을 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이야기 했듯이 마르크스의 유토피 아주의였던 ‘코뮤니즘’이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상태가 아니고”, “현실 이 형성해가야 할 어떤 이상도 아니며”, “현 상태를 지양해나가는 현실의 운 동”이었다 물론 이미 ‘죽은 개’가 된 지 오래인 마르크스가 강내희의 “유효한 유토피아 10)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라고 노래했다 104 2015년 제12권 제2호 주의”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강내희가 “유효한 유토피아 주의”라는 용어를 착안해온 만하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러저러한 유토피아 주의가 “행동으로 전환되어 당시의 지배적 질서를 부분적으로나 전면적으로 혁파”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행동의 뿌리가 현실에서 발견되어야 하고, 유토 피아주의가 그 행동과 연대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강내희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주의는 ‘유효한 유토피아주의’인가? 강내희는 현실의 자본주의사회를 ‘노동사회’라고 칭하고 이를 지양한 자신이 그리는 유토피아를 ‘문화사회’라고 칭하였다 그는 이 문화사회가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코뮌주의’(코뮤니즘)의 또 다른 이름에 해당 한다고 말한다.11) 다시 말하자면 문화사회의 기획이란 “자본주의를 넘어서려 는, 다시 말해서 오늘날 지배적인 사회구성의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하는 기 획”(504)이다 ‘노동사회’가 지양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의 유토피아’ 인 반면 ‘민중의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이 민중의 디스토피아인 이유를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계산적 거래가 만연하고 호혜, 환대, 연대와 같은 인간적 교류가 줄어들었다 둘째,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 셋째, 금융화로 부채문제가 심각하다 넷째, 시공간의 직조변화는 사람을 여유 없게 하고, 과거에 공통재였던 것들을 사유화한다 다섯째, 배제된 자들이 늘어났다 여섯째, 사회적 위기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의 가공할 후퇴가 진행된 다 그는 이러한 여섯 가지 문제점들을 근거로 “오늘날 인류는 유적 위기를 맞 고 있다고 말한다면 잘못일까”(516)라고 묻는다 이어서 그것을 극복한 사회로 서의 ‘문화사회’를 제시하는 것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 ‘유효한 유토피아주의론’을 전개하고, 자신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전 망을 이 책에서 중요하게 분석해왔던 시공간과 주체의 문제에 한정하여 제시 한다 그가 제시하는 문화사회의 시간계획과 공간계획은 ‘현 상태의 지양’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제시할 만한 것이다 그는 노동시간을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으로 줄이고 “‘최소임금’에 버금가는 ‘최소자유시간’”(534)을 확정 할 것을 주장한다 한편 공간계획에서는 자본주의적인 균질적 공간을 지양하고 11) 가라타니가 항상 말하듯, 뭐라고 부르든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5 각기 특이성을 가진 차이공간을 추구할 것을, 그리고 이와 함께 사회적 필요공 간과 ‘최소 개인공간’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체형태의 변혁을 주장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역능과 구별되는 새 로운 역능 강화와 이를 위한 새로운 감각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 러한 새로운 주체형태의 개발은 시공간의 변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말 한다 그러나 이런 주체가 소수이면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므로 “광범 위하게 모방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주체여야 한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주 체는 평범한 대중의 일원으로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주체다”(543)라고 결론 짓는다 그의 유토피아가 “유효한” 유토피아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 만 그의 유토피아는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혁명적”이거나 “전복적”이진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현실 속에서 “낡은 사회를 혁파할”, “전복적 측면”을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유토피아의 체 계를 상상하고 있으며(그 체계는 다름 아닌 현실의 ‘mirror image’이다) 또한 그 체계의 도래를 가능하게 할 주체마저도 여전히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화사회’라는 유토피아주의를 도출하는 데 그의 ‘문화 정치경제’의 문화설정은 유효하게 작동하는가? 가라타니는 자본=네이션=스 테이트라는 현대사회의 구조 그 자체가 교환양식D가 지배하는 ‘세계공화국’을 단지 ‘규제적 이념’으로서뿐만 아니라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구조적 필연성’ 으로 요구한다고 말한다.12) 반면 강내희의 경우 그의 ‘문화정치경제’의 문화설 정은 아직은 가상적 문화사회의 미시적 측면들이 모습들을 묘사하는 데 그칠 뿐이다 요컨대 가라타니의 유토피아인 교환양식D가 지배하는 사회는 자본= 네이션=스테이트라는 구조의 필연적 효과(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사유되는 반 면, 강내희의 유토피아인 ‘문화사회’는 아직은 ‘문화정치경제’라는 문제설정이 행하는 ‘켜켜이 쌓인 미시적 분석의 효과’로서 제시되지는 않는다 이 점이 ‘문 12) 사실 이 점이 󰡔트랜스크리틱󰡕(가라타니 고진, 2005)과는 확연하게 다른 󰡔세계사의 구조󰡕(가라타니 고진 2012)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규제적 이 념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도래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소고」(박도영, 2014)를 참고하라 106 2015년 제12권 제2호 화정치경제’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가장 큰 차이이다 맺음말 강내희의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라는 텍스트는 리뷰의 대상 으로서는 매우 터프한 텍스트였지만, 만약 독서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매우 흥미롭고, 많은 영감을 주는 텍스트였다 국내에서 국내 연구자가 출판한 책으 로는 근래 보기 드문 역작이기도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는 금융화가 자본 주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체형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에 있다 그에 못지않은 기여는 문화라는 실천적 ‘심급’이 사 회구성의 유지와 변화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에 있다 그의 ‘문화사회’가 매우 제한적인 논의만을 담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현 상태의 지양’으로서의 유토피아는 머리속에서 구상될 수 있는 완 벽한 체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문화사회’는 현 상태를 지양할 ‘전 복적 측면’을 아직 현실에서 발견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유 효성’을 보완해야 하겠지만 그 역시 그 혼자서 짊어져야할 과제는 아니다 마 찬가지 이유에서 그의 ‘문화정치경제’의 문제설정 역시 보완되어야 하고, 보완 되어 갈 것이다 이 책을 리뷰하는 동안 나는 금융화된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배제를 경 험하고 있는 이른바 ‘청년’ 세대의 자기고백적 문학과 담론 및 실천에 대해 따 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한 젊은 평론가의 짧은 글 두 편을 우연히 읽었다 ≪실 천문학≫ 116호에 게재된 「표백된 천국에서 살아남는 법: 2010년대 청년 소설 과 몰락의 세계감」(류연미, 2014)과 ≪말과 활≫ 7호에 게재된 「너무 많은 말과 너무 적은 움직임: 2010년대 청년세대의 피로감에 관하여」(류연미, 2015)이다 류연미는 최근의 청년 문학에서 “모든 구성원에게 자리를 주어야 할 필요가 없는 완성된 사회에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는 이 들, 이러한 끝없는 쳇바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 그 시도들을 교묘하게 재편입하는 자본주의의 장치들이 추동하는 총체적인 몰락의 세계감”(류연미,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7 2014: 310)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쓴다 …… 어떤 일이 가장 가망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르게 바꿔보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 “나는 이제 사진이 고통스러운 사회 를 변혁시킬 것이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지독하게 사진을 찍는 한 기록 사진가처럼, 또는 “‘말의 힘’이 사회변혁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을 비관하면서 계속해서 글을 쓴 한 저널리스트처럼 아무리 두드려도 금 하나 가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사회 앞에서 축적되는 피로감을 아무 근거 없이 지워버리는 것 성 과 없는 전투의 연속 속에서도 전장을 뺏기지 않는 것 이번 생에서의 승리가 요원할지라도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 그리고 이는 청년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일 때, 착각은 하나의 효과가 된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때는 그걸 꿈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류연미, 2015: 123) 유토피아주의는 예컨대 청년들이, 청년들만이 아니라 ‘완성된 사회’에서 배제 된 모든 사회구성원이 ‘전장’에서 꾸는 ‘꿈’에 기반을 두고 그들과, 그들의 꿈과 연대함으로써 비로소 ‘유효한’ 유토피아주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문제설정은 이러한 유토피아주의가 현 상태를 분석하고, 나아가 ‘현 상태를 지 양’할 길을 찾도록 기능할 때 비로소 ‘유효한’ 문제설정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그가 앞으로도 ‘전장을 뺏기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2015년 4월 1일 투고, 4월 17일 심사, 4월 23일 게재 확정) 108 2015년 제12권 제2호 ❒ 참고문헌 강내희 2014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문화과학사 박도영 2011 「트랜스크리틱: 도덕적 명령과 진리에 대한 강박 사이」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8권 제1호 _ 2014 「규제적 이념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도래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 사의 구조󰡕에 대한 소고」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1권 제4호 류연미 2014 「표백된 천국에서 살아남는 법: 2010년대 청년 소설과 몰락의 세계감」 ≪실천문학≫, 116호, 실천문학사 _ 2015 「너무 많은 말과 너무 적은 움직임: 2010년대 청년세대의 피로감에 관하 여」 ≪말과활≫, 7호, 일곱번째숲 가라타니 고진 2005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 송태욱 옮김 한길사 _ 2006 󰡔근대문학의 종언󰡕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_ 2009 󰡔네이션과 미학󰡕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_ 2012 󰡔세계사의 구조󰡕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_ 2014 󰡔󰡔세계사의 구조󰡕를 읽는다󰡕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아리기, 조반니 2008 󰡔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백승욱 옮김 그린비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9 ❒ Abstract The Structure of Everyday Life of Capitalism and Effective Utopianism : A Critical Review of Kang’s ‘CulurePoliticsEconomy’ and ‘Cultural Society’ Do-Young Park The most important theoretical contribution of Neo-liberalist Financialization & CulurePoliticsEconomy(Kang, 2014) is its analysis of the way neoliberalist financialization, as a politico-economic metamorphosis of the accumulative structure of capitalism, changes the contemporary human experiences of time and space, and eventually, the definition of human itself The power which made it possible to represent so vividly the changed everyday life of capitalism came from the converging effort to see culture, politics and economy synchronistically: cultural and political changes as connected with economic changes Kang’s problematique of ‘CulturePoliticsEconomy’ is similar to Karatani Kojin’s ‘Capital=Nation=State’ in many ways However, the latter focuses on the macro-structure of capitalist social formation while the former highlights the micro-complexity of society Furthermore, Karatani’s utopia, in which ‘exchange mode D’ is dominant, is thought as an inevitable effect of the structure ‘Capital=Nation=State’ (or as a Return to the Repressed), while Kang’s utopic ‘Cultural Society’ is not yet provided as the effect of the cumulative microanalyses of ‘CulurePoliticsEconomy’ Keywords: Kang, Neo-liberalist Financialization, CulurePoliticsEconomy, Cultural Society, Karatani Kojin, Capital=Nation=State, exchange mode D 110 2015년 제12권 제2호 ... 강내희는 “혁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103 명적 과학과 교조적 과학의 차이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유토피아 주의에 대한 태도다”(522)라고 말함으로써 마르크스가 유토피아주의? ??고 칭한 “교조적 과학”에게서 유토피아주의? ?? 빼앗아 “혁명적 과학”에게 넘겨준다 이 제 “혁명적 과학”에서 “과학적 유토피아주의? ??가... 활용되었는가를 요약해보면 과 같다 자본주의적 일상성의 구조와 유효한 유토피아주의 99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자본주의적 일상성에 미친 변화에 대한 ‘문화정치경제’적 분석 정치경제적 변화 신자유주의 금융화 현 금융화 단계의 특징 금융파생상품, 기획금융 작동원리 미래가치 할인(현재가치화) 일상성의 구조 공간 주체형성 경관화·안면화... 2012)에 대한 가라타니 자신의 개략적인 소개는

Ngày đăng: 20/10/2022, 11:03

TÀI LIỆU CÙNG NGƯỜI DÙ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