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측면에서 근래 ‘근대 한국종교의 공공성’을 재구축하고자 하 는 집단연구가 중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그 의미가 사뭇 크다. 이 는 우선적으로 식민지시대 한국의 종교지형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출 발했다. 나아가 전통종교와 외래종교는 물론 특히 ‘한국신종교’가 ‘시 민종교’ 또는 ‘민중종교’로서 지니는 이념과 이상 가운데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의 존재방식과 그 특질에 대한 실증적 논구로 이어졌다.1) 그 작업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근대 한국종교를 둘러 싼 사회경제적 배경의 측면에서 보면, 우선 식민지시대 이에 대해 조 사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한국사회 인식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가 있었다.2) 또한 그의 자료에 포함된 통계 등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그 기본지형을 살피는 것으로 이어졌다.3) 이를 통해 1920, 30년대 개
근대 한국종교의 http://doi.org/10.35647/kjna.2020.38.89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89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66) 김민영** < 차례> Ⅰ 머리말 Ⅱ 근대 한국의 ‘사회·경제’ 인식 Ⅲ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역사는 문명의 수용과 변용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사회 역 시 근대문명과 접하면서 한편에서는 반발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용과 변용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겠다 근대 한국의 종교사상 역 시 예외가 아니며, 그러한 도전과 응전의 과정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B8099758) ** 군산대학교 행정경제학부(경제학 전공) 교수, 근현대사회경제사 90 韓日民族問題硏究 이러한 측면에서 근래 ‘근대 한국종교의 공공성’을 재구축하고자 하 는 집단연구가 중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그 의미가 사뭇 크다 이 는 우선적으로 식민지시대 한국의 종교지형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출 발했다 나아가 전통종교와 외래종교는 물론 특히 ‘한국신종교’가 ‘시 민종교’ 또는 ‘민중종교’로서 지니는 이념과 이상 가운데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의 존재방식과 그 특질에 대한 실증적 논구로 이어졌다.1) 그 작업은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근대 한국종교를 둘러 싼 사회경제적 배경의 측면에서 보면, 우선 식민지시대 이에 대해 조 사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한국사회 인식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가 있었다.2) 또한 그의 자료에 포함된 통계 등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그 기본지형을 살피는 것으로 이어졌다.3) 이를 통해 1920, 30년대 개 1) 여기에서 ‘근대 한국종교’라 하지만 특히 ‘한국신종교’까지 포함하여 살피고 있다 이는 근대전환기 전통종교와 외래종교를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 ‘한국신종교’가 갖는 고유성, 자생성, 토속성, 민중성 등을 강조하 고자 하는 까닭이다 당시 이에 대해 고유종교, 토속종교, 자생종교, 신흥 종교, 유사종교, 신종교, 민족종교, 민중종교 등 다양하게 불리웠던 것처럼, 이를 포함함으로서 ‘근대 한국종교의 공공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작업 결과가 있어 참고로 된다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근대 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ꡕ, 모시는사람들, 2018 ; 동, ꡔ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ꡕ, 2019 ; 동, ꡔ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 읽다ꡕ, 2020 그밖에 이에 대한 구 체적인 연구동향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각각 참고문헌 등이 있어 참고로 될 것이다 2) ꡔ朝鮮の類似宗敎ꡕ(村山智順, 1935)에는 1860년 ‘동학’을 시작으로 1934년 8월 조사 당시까지 개별 ‘신종교’의 신도와 교구, 연도 및 지역별 교세 등 이 자세하게 나타나있다 또한 조사 당시의 각 종단별 신도(남여)와 포교 소 및 교구와 지역별 교세를 통계와 그래프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각 종 교의 지역별, 시기별(188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신도수의 변화도 제 시하고 있다 특히 당시 ‘신종교’를 ‘유사종교’라 표현하며 그 분포와 교세 의 성쇠, 신앙의식, 영향은 물론 종교사상운동과 사회운동까지 살피고 있 다 3) 김민영, 「식민지시대 한국 ‘신종교’ 단체의 동향과 특징: ꡔ朝鮮の類似宗敎ꡕ (村山智順, 1935)의 재검토를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 연구ꡕ 34, 35~69쪽, 2017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91 별 ‘신종교’의 동향과 부침에 대한 기초적인 양적 고찰이 이루어진 셈 이다 이로써 근대 한국종교 역시 우리사회의 정치경제와 생활문화 등을 지탱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음이 더욱 분명해졌다 또한 그 숫자적 파악도 시도되어 그 양적 동향의 대강을 알 수 있었다.4) 물론 통계자료의 신뢰성, 양적 데이터의 이면에 놓여있는 개별 종교의 구체적 존재양상에 대한 세부적 검토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나아가 근대시기 한국의 종교가 국내외 경제사회의 변동을 주체적 으로 인식하며 이른바 근대문명에 대해 나름의 방식대로 응전해 나간 과정에 대한 고찰도 있었다 즉 근대 한국의 종교 또한 신앙의 이념적 표출을 넘어 ‘이념의 사회화’라는 면에서, 미래의 새로운 사회와 국가 질서 등을 갈망하며 근대와 대면해왔던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구 체적인 일상적 삶과 관련하여 민족 및 경제사회운동 등에 참여하여 사회적 신망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종교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자체가 하나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이에 대해서도 일정 한 탐구가 이루어졌다.5) 그 연장선에서 1910년대 일제의 강제병합과 3·1운동을 전후하는 시기 지역단위의 사회 역시 큰 전환기적 변동을 경험하고 있었음에 착안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특히 전남 영광지역에 대한 연구가 있었 다.6) 이는 이 지역이 불교의 도래지였음은 물론, 동학과 개신교, 그리 고 천주교와 원불교(당시에는 불법연구회였음) 등이 공존했던 종교문 화와 사상적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민족사회운동과 경제운동의 전개 등을 통해 근대시기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공공성과 지역적 투 4)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근대 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ꡕ 5) 박광수 외, ꡔ한국 신종교의 사회운동사적 조명ꡕ, 집문당, 2017 6) 김민영, 「1910년대 전후 전남 영광지역의 종교지형과 민족사회·경제운동」,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연구ꡕ 36, 5~36쪽, 2018 92 韓日民族問題硏究 영’에 주목한 것이다.7)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근대 한국종교 역시 자신의 운동논리 가운데 시대상황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수용하는가 하면, 응전의 과 정에서 각종 대안을 제시해왔음이 확인되었다 즉 근대 한국종교의 공 공성에 대한 집단적 탐색 가운데 그 ‘사상적 지형도와 사회적 실천’에 대한 일정한 연구 성과가 축적된 것이다.8) 이후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정치적 독립운동은 물론 경제적 자립운 동과 관련하여 근대 한국종교 역시 단순히 개인의 수양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사회경제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대응하고 있었 던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근대시기 한국의 경제자립운동 가운데 경제적 실력양성론은 ‘물산장려운동’이 대표적인데, 이를 주요 종교계와 연계한 시론적인 검 토도 이루어졌다.9) 이를 통해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교차라는 측면 에서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물산장려운동의 이해와 실천을 기초적으 로 탐색한 것이다 이처럼 종교계의 물산장려운동은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민족자본의 대응뿐 아니라 각 종교별 사회경제발전관 등 종교적 공공 성의 보편적 실천윤리를 드러내는 주요한 과제라 할 수 있겠다 따라 서 각 개별 종교의 활동에 대한 천착과 함께 특히 해방 이후 전개된 압축적 경제성장과 개발, 물질문명과 문화의 조화, 시장 자본주의 미 래 등과 관련된 종교계의 인식과 함께 더 많은 후속연구가 진행되기 7) 이 시기 지역연구 차원에서는 특히 충남 계룡산과 전북 모악산 지역에 대 한 검토 역시 향후의 과제로 손꼽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 는 柳炳德 著, ꡔ鷄龍山下 宗敎集團體와 母岳山下 宗敎集團體의 比較硏究ꡕ, 이리: 圓光大學, 1968 참고 8)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근대한국 개벽종교를 실천하다ꡕ, 2019.2 9) 김민영, 「1920·30년대 물산장려운동의 경과와 종교계」,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연구ꡕ 36, 5~37쪽, 2019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93 를 기대한다.10) 잘 알려져 있듯이 근대 한국종교는 조선 후기 폭압적 왕정과 침략 적 외세라는 정치적·사회적 고난의 시기 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 과 정에서 한국종교가 민중을 역사적 주체로 자각하며 ‘사회와 경제’ 개념 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립해 나갔는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이러한 작업의 가장 기초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사 회’는 국가(정치사회)와 시민사회뿐 아니라 시장경제(경제사회)까지 포 함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일제 강점기라는 사회 경제적 상황 가운데 그 시대적 가치, 개인의 책임, 사회적 정의 등을 포함한 이른바 ‘공동선’을 바탕으로 한 ‘사회경제적 공공성’에 대한 각 종교들의 개별적인 노력과 실천에 대해 더한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 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 전제 작업으로서 근대전환기 한국사회에서 ‘사회·경제’ 개념이 어떻게 형성·유통되었는지에 대해 그간의 연구사 적 공백을 메운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그 개념에 대한 수용의 역사를 토대로 당시 근대 한국종교가 새로운 공공영역의 출현 가운데 ‘종교의 사회경제적 역할’을 어떻게 자각해나갔는지에 대해 기 초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근대전환기 한국종교의 ‘사회경 제적 공공성’을 탐색하는 실마리가 찾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10) 이상에서 검토된 근대시기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측면의 공공성 재구축’ 가운데 몇 가지 부각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시기 한국종교, 특 히 ‘신종교’를 바라보는 타자적 인식의 극복과 종교가 공적 영역으로부터 탈각하여 사적 영역화되는 논리와 그 고착화 등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더 진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근대시기 민족사회 및 경제운동의 전 개 가운데 각 개별 종교의 존재양상과 그 지역적 특성 및 공공성의 공통 적 기반을 복원하고 다시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근대시기 한국종교의 시장자본주의에 대한 인식 및 실천에 대한 탐구 역시 개별 종 교의 사회경제발전관 등 공공성의 보편적 실천윤리를 드러내는 주요한 과 제임이 확인되었다 94 韓日民族問題硏究 Ⅱ 근대 한국의 ‘사회·경제’ 인식 ‘사회’ 인식 ‘사회’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 성된 담론적 산물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 역시 사회개 념의 기원에 해당되지만 국가, 교회, 사회가 모두 합체되어 있는 미분 화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학계에서 근대시기 ‘사회’를 개념사적 측면에서 살피고 있는 주된 연구자로는 특히 사회학자 박명규와 정치학자 박주 원을 들 수 있겠다.11) 우선 박명규는 197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이르 는 시기 ‘사회’ 개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12) 이어 그는 한말 ꡔ독립신문ꡕ이 ‘사회’ 개념을 통해 각종 단체와 자발적 운동의 출현을 부각시키기 위해 활용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당시 조선에서 근대 시민사회를 지향하던 여러 움 직임을 조장·촉진하려 했던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독립협회는 ‘나라 의 주인인 인민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안들에 관심을 가지며, 공론 을 통해 그 사안들을 해결하는 데 참여’해야 함을 강조했다고 주장한 다 그리고 ‘인민’이 시민적 공공영역을 형성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 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會)’라는 단체의 결성을 통해서였다고 논구한 다 즉 ‘회’의 조직, 동등한 의사 참여 등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공론 가운데 바로 ‘사회’라는 새로운 개념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890년대 후반에 ‘사회’라는 용어가 소개되면서도 이후 명확한 의미를 11) 박명규, 「한말 ‘사회’개념의 수용과 그 의미체계」, ꡔ사회와 역사ꡕ 59, 2001 ; 박주원, 「근대적 ‘개인’, ‘사회’ 개념의 형성과 변화-한국 자유주의의 특성 에 대하여」, 역사문제연구소, ꡔ역사비평ꡕ 67, 2004, 207~238쪽 12) 박명규, 「한말 ‘사회’개념의 수용과 그 의미체계」, 51~57쪽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95 지닌 개념어로 정착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어 그는 1900년대 예컨대 천도교의 ‘만세보’에서 그 개념이 활용되 고 있고, 이와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애국계몽운동 차원의 ‘사회’ 개념의 위상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들어 각 매체들의 등장과 함께 ‘사회’ 개념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실 증연구는 부족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 다.13) 또한 식민지기 1910년부터 192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 ‘사회’에 대 한 이론과 상상, 그리고 실천을 분석한 김현주는 1900년대 사회개념의 지형을 대체로 박명규의 연구를 토대로 정리하고 있다.14) 나아가 1910년 대의 연구사적 공백도 지적한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1920년대의 풍부 한 실증연구를 통해 ‘사회’ 개념의 구체성을 입증하고 있다 한편 ‘사회’ 개념에 대한 박명규의 검토와 관련하여 박주원은 ‘회’라 는 장소가 반드시 ‘개화기 사회개념의 주된 의미’로 묘사되고 있지 않 는다고 보고, 오히려 사회는 ‘사욕만을 앞세운 경쟁의 공간’이 되고 있 었다고 밝히고 있다.15) 즉 그는 이 시기 ‘사회’라는 개념을 ‘국가’와는 다르지만 ‘교류와 결사’를 의미하는 ‘회(會)’나 ‘계(契)’와 구별되는 ‘사리 사욕의 경쟁적 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16) 따라서 이상에서 보았듯이 근대시기 ‘사회’에 대한 개념사와 관련하 여 연구자들 사이에서 주목되는 주요한 쟁점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 다 먼저 주요 연구 시기가 1900년대에서 1920년대로 특히 1910년대의 13) 박명규, 「한말 ‘사회’개념의 수용과 그 의미체계」, 80쪽 14) 김현주, ꡔ사회의 발견ꡕ, 소명출판, 2013, 63쪽 15) 박주원, 「근대적 ‘개인’, ‘사회’ 개념의 형성과 변화-한국 자유주의의 특성 에 대하여」, 207~238쪽 16) 박주원, 「근대적 ‘개인’, ‘사회’ 개념의 형성과 변화-한국 자유주의의 특성 에 대하여」, 235쪽 96 韓日民族問題硏究 연구사적 공백과 1920년대의 구체성 규명 부분이 과제로 제기된다 또 한 주요 분석 대상의 텍스트가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문’ 등이라는 점이다 즉 당시 ‘독립신문’은 사회적 계몽인들에 의해 발간되는 대중 신문이다 그만큼 분석대상으로 삼는 다양한 매체의 확대와 그 차이에 대한 연구의 심화가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개화기 ‘사회’ 개념 의 주된 의미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교류와 결사’를 의미하는 ‘회’나 ‘계’와 구별되는 ‘사리사욕의 경쟁적 공간’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 등 ‘사 회’에 대한 각 시대별 다양한 인식과 개념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하 는 것도 필요다고 생각된다.17) 이러한 가운데 근대전환기 특히 한말시기 한국사회의 ‘개인과 사회’ 인식에 초점을 두고 그 원형을 찾는 작업이 있어 관심을 끈다 특히 전상숙은 한말시기 국내 주요한 언설에 투영된 ‘인민’관과 ‘민권’ 인식 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 즉 한말이후 근대적 전환기 ‘개인과 사회’ 에 대한 인식이 ‘개개인으로서의 인간과 인간 이성에 대한 자각과 신 뢰가 유보된 채 선진 지식인들의 정치적 역할과 사회적 발언력 고양 에 동원되어 이바지하는 존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18) 주지하듯이 근대전환기 한국은 서양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기 전에, 한중일의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근대화’를 경험한 일본에 의해 ‘개항’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후 일본을 주요한 통로로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수용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한국근대의 출발은 일본적 근대의 수용, 근대화와 국권확립을 위한 주체의 양분화, 군권과 민권 의 대립 갈등을 특징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19) 그만큼 서양 근대 17) 다만 여기에서는 논지와 지면의 제한 등을 고려하여 다음 과제로 남겨두 고자 한다 18) 전상숙, 「한말 ‘민권’ 인식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개인’과 ‘사회’ 인식에 대 한 원형적 고찰: 한말 사회과학적 언설에 나타난 ‘인민’관과 ‘민권’ 인식을 중 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ꡔ한국정치외교사논총ꡕ 33집 2호, 2012, 25쪽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97 의 문물과 주요 개념 역시 체계적, 계통적 수용이 용이하지 않았던 것 으로 이해된다 즉 한말 이후 근대전환기 한국에서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인식은 개인과 인간 이성의 자각과 신뢰에 기초하기보다 오히려 ‘신진 지식인들의 정치적 동원’ 가운데 다소 피동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한말의 피동적 인민관과 의무가 선행된 민권’에 대한 인식 가운데 한국 근대 초기의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굴절되었고, 그 인식이 보정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20) 즉 1910년 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사회’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세계이해를 표현한 관용어나 다름없었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이 당시 ‘사회’는 자율성을 가진 영역으로 표상되면서 조선인들의 생활 영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적, 자율적이라는 이미지를 산출했고, ‘조선사회’는 조선인들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표상하는 포괄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21) 그 연장선에서 1920년대에 이르면 한국 ‘사회’는 다양한 분화 경향을 표상하고 다양하게 분화된 조직들과 영역들을 종합하는 실재를 표상 한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중국의 경우 5·4운동 이후의 ‘사회개조’나 일본의 ‘사회집단’, ‘생활사실’ 등에 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22) 즉 1920년대에 이르면 ‘사회’라는 용어 가 다양하게 분화된 조직들과 영역들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정치, 경 19) 전상숙, 「한말 ‘민권’ 인식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개인’과 ‘사회’ 한 원형적 고찰: 한말 사회과학적 언설에 나타난 ‘인민’관과 ‘민권’ 심으로」, 27쪽 20) 전상숙, 「한말 ‘민권’ 인식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개인’과 ‘사회’ 한 원형적 고찰: 한말 사회과학적 언설에 나타난 ‘인민’관과 ‘민권’ 심으로」, 27쪽 21) 김현주, ꡔ사회의 발견ꡕ, 258~260쪽 22) 김현주, ꡔ사회의 발견ꡕ, 369~374쪽 인식에 대 인식을 중 인식에 대 인식을 중 98 韓日民族問題硏究 제, 사회 등으로 분화되고 ’사회문제‘, 사회교육’, ‘사회교화’ 등의 합성 어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23) 그렇게 본다면 근대 한국에서도 서구의 문명 수용 등에 발맞추어 ‘종교’와 ‘사회’ 등 각각 그 개념과 영역이 정립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종교사회’라는 용어 역시 ‘종교에 기반한 단체’를 지칭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를 둘러싸고 공공성에 대한 담론적 논의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 개념사적 접근은 종교 와 공공성을 논하기 위해 주요한 연구주제임에 분명하다 그 경우 ‘사 회’는 결국 당시의 ‘공익’, ‘개화’ 등의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 한국에서 ‘사회’에 대한 개념은 논의의 시기, 사용한 텍스트, 같은 텍스트라 하더라도 인용자의 시선과 관련 성에 따라 다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신문이라 하더라도 독 립신문, 황성신문, 만세보,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문 등 시기와 편집주 간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만큼 일정 시기, 특정 매체에 나타난 논점을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점에도 주의가 필요 하다고 생각된다.24) 따라서 이에 대한 논점의 파악 가운데 그 실체상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심화되고 그 가운데 전체상이 정립되기를 기대 한다 23) 예컨대 당시 ꡔ동아일보ꡕ에는 조선인들이 ‘민족운동’으로 전개해야 할 ‘사회 운동’을 ‘문화운동’으로 규정하면서 민족운동을 사회운동, 그 내용을 문화운 동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와 ‘문화’ 개념이 결합되는 양상마저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사회의 통합성이 주장되면서 ‘인격’, ‘도덕’과 같은 용어도 유행했다는 점은 개인의 도덕이 ‘사회’를 형성·유지시키는 원동력 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컨대 ‘사회개혁’이라 하더라도 제 도나 구조개혁보다는 개개인의 도덕적 인격과 정신적 수양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김현주는 ‘사회’의 재배치로 이 름 붙이고 있다 김현주, ꡔ사회의 발견ꡕ, 384~386쪽 24) 이에 대한 종합적인 정리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108 韓日民族問題硏究 ‘미신’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문화적 우월주의 역시 부인하기 어려 울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기독교를 통한 문명화가 ‘부귀 복락’ 같은 현세지향적 욕구와 연계되어 있었던 점이다 즉 공평 한 법, 평등한 사회질서, 생업의 발전, 외국과의 화평, 위정자의 경천 애인 같은 사회적 측면과 함께 무병, 장수, 물질적 풍요 등 현세적 행 복에 대한 부분 또한 상당하다는 점이다.56)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종교적 제국주의적 사명을 열렬히 전하거나 복음주의적 경향 가운데 세상과 분리된 교회, 사회참여에 미온적이고 보수와 교회 정체성 추구 등으로 치닫게 된 또 하나의 흐름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57) 근대 한국 ‘신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그렇다면 이 시기 한국 ‘신종교’의 사회인식과 존재방식은 어떠했을 까 이와 관련하여 우선 ‘근대 한국종교’의 역사적 전개와 방향성에 대 한 조경달의 ‘민중종교’적 분석이 있다.58) 즉 그는 당시의 상황을 ‘민중 자신들의 변혁 주체성이 철저하게 부정되는 대부흥운동과 종말론적 미신의 강화, 종교의 정치·계몽운동화, 내면세계 구제와 사회공헌’ 등 으로 특징짓고 있다.59) 또한 윤승용은 한말 개화기인 1860년 동학을 시작으로 하여 1894년 56) 이명호, 「근대전환기 종교영역의 변화와 사회인식」, 467쪽 57) 김권정, ꡔ근대전환기 한국사회와 기독교 수용ꡕ, 북코리아, 2016 58) 이에 대해서는 조경달·박맹수, 「식민지 조선에 있어 불법연구회의 교리와 활동」, ꡔ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ꡕ 67, 2016, 251~275쪽 특히 기독교의 평양 대부흥운동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자료가 참 고로 된다 김권정, ꡔ근대전환기 한국사회와 기독교 수용ꡕ, 152쪽 59) 이 가운데 특히 기독교의 평양 ‘대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 는데, ‘각성’과 ‘회개’가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것이 이후 기독교 ‘부흥’의 큰 전환점이 되었음은 연구자 대부분의 통설이 기 때문이다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09 농민혁명,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민중종교로서의 근대 한국종교 가 사회변혁과 문명개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 다.60) 나아가 그는 그러한 역사적 맥락 가운데 기독교가 근대적 종교 체제로 유입되고 유교 역시 영향을 받는 가운데, 동학도 개신하여 ‘천 도교’로서 문명 종교적 체제에 ‘대응’해 나갔다는 것이다 요컨대 당시 ‘근대 한국종교’ 역시 ‘문명개화와 민족국가 형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직시하며 적절히 수용함으로써 향후 민중 민족운동을 선도해 갈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61) 그러한 측면에서 근대시기 한국종교의 위상과 관련하여 근래 새롭 게 제기되고 주목을 받는 문제제기가 있어서 눈길을 끈다 즉 구한말 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한국사상사를 ‘척사파, 개화파, 개벽파’로 보는 견해이다.62) 특히 허남진은 당시 척사파가 ‘서구 문명의 야만성 을 성리학적 사유로 논증하고 도덕적 문명사회에 근거한 화이론적 사 유’를 견지했으며, 개화파는 ‘만국공법의 세계를 발견하고 서구문명을 문명의 표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벽파’ 라 하여 개화파와 척사파의 양극단 사이에서 근대 한국사회에 새롭게 자리매김한 동학, 천도교 등 근대 한국종교의 ‘개벽사상’을 제기하고 있다 즉 ‘민중이 개벽의 주체가 되어 개척하는 새로운 문명 모색’이라 는 것이다.63) 아울러 근대 ‘한국신종교’의 사회경제 인식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 역시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동학이 천도교로 전환하는 시대적 상황 가운데 개화기의 애국계몽운동을 서구적 사회진화론의 60) 윤승용, 「한국 신종교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와 과제」, ꡔ한국종교ꡕ 36, 2013 61) 윤승용, 「한국 신종교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와 과제」, 87~125쪽 62) 허남진,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ꡔ종교문 화연구ꡕ 32, 2019.6 및 조성환, ꡔ한국 근대의 탄생ꡕ, 모시는 사람들, 2018 63) 허남진,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157쪽 110 韓日民族問題硏究 실력양성론으로만 규정하는 경향이 짙었던 데에 대한 일정한 자기반 성이 있다 즉 개화기 애국계몽운동 역시 ‘동학-천도교’를 배제하고는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 다.64) 이와 관련하여 예컨대 당시 ‘천도교’는 ‘종교성과 사회성’의 완전한 실현을 ‘천인공화(天人共和)’로 표현하고 있음이 주목된다.65) 즉 ꡔ초등 교서ꡕ에 ‘사회’를 사람과 사람의 결합체로 보고 사람과 관련되는 최대 의 것을 종교의 공덕사회(公德社會)와 국가의 공의사회(公義社會)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사회’는 스스로 성립되는 자성체(自成體)가 아니 라 우리의 심력(心力)에 의존하여 성립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나 아가 ‘도덕’은 내적 규제로 작동하는 사회규범이라 했다 특히 ‘윤리’를 개인윤리, 사회윤리, 국가윤리로 구분하고 신을 사랑하는 자는 사회를 위하여 공덕심(公德心)과 공익심(公益心)을 다하는 것이라 하였다 특 히 여기에서 ‘사회윤리’라는 개념이 제기되는데, 이는 종교와 사회 간 의 관계를 잘 명시해 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또한 ‘경제’ 개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인식의 틀과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사회건설의 구상까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음의 인용문 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제’를 인류생활 가운데 가장 긴요한 문제로 보고 ‘상업과 산업경제’, ‘노심과 노력경제’, ‘국가와 인민경제’로 자세하 게 구분하여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인류생활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이다 경제의 대 략을 말하면 산업경제와 상업경제, 노심경제(勞心經濟)와 64) 오상준 지음, 정혜정 역해, ꡔ동학 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오산준의 ‘초등 교서’ 다시읽기ꡕ,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7쪽 65) 오상준 지음, 정혜정 역해, ꡔ동학 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오산준의 ‘초등 교서’ 다시읽기ꡕ, 10쪽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11 노력경제(勞力經濟), 그리고 국가경제 및 인민경제로 구분 될 수 있다.”66) 나아가 경제는 인류생활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로서 ‘산업, 상업, 노 심, 노력, 국가 및 인민’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우선 ‘산업경제’ 는 사람이 어떤 업무에 종사하든지 물품의 귀천과 형태, 노동력 비용, 가치, 운송지 등을 고려하여 계산하는 즉 비용과 지출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반면 ‘상업경제’는 소기업가(세공 및 개인 상업)와 대기업가(합명합자주식회사)에 관계없이 모든 상시자본(기계 등 영구 자본)과 운송자본(유통금액 등의 자본) 등이 기초를 이루며 수요 공급 과 시장 경기에 따라 판로를 예측하여, 가치변동과 투기방법, 신용고 객(단골)과 경쟁의 유기적 활동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상업 흥왕 (興旺)의 여파는 개인생활뿐만 아니라 국가부강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 친다고 보고 있다 한편 ‘노심경제’는 도덕과 지식, 기예와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노력경제’는 노동자의 노동자본과 기업가의 보수 여하에 관한 비교상 의 계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국가경제’는 인민의 생존 발달, 즉 교육, 군사, 청결, 제방, 도로, 관리, 대개혁 등 인민생활에 관 한 것으로 개인경제와 다른 점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국한하 고 있다 나아가 ‘인민경제’란 인민의 공의적(公義的) 정신경제로서 재 산 이익상의 경제보다 가장 큰 자리를 점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이를 현대경제학의 측면에서 볼 때, 유통 중심의 상업자본과 자본과 노동력을 기초로 생산 기반을 이루는 산업자본에 대한 구분의 모호성 이나 인민 및 국가경제의 경우 조세 부분만을 중요한 차이로 보는 점 66) 오상준 지음, 정혜정 역해, ꡔ동학 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오산준의 ‘초등 교서’ 다시읽기ꡕ, 90~95쪽 112 韓日民族問題硏究 등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이른바 ‘민주경제’라는 틀 에서 천도교의 건국이념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에 향후 그 발전에 대한 점을 포함하여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생산수 단의 재분배, 계급적 대립 없는 단일성의 민족경제, 개인 사유권 가운 데 토지문제의 시급한 해결이 강조된 것으로 이해된다 뿐만 아니라 농토가 좁고 농업기술의 발달이 미약하며, 농업생산액이 빈약한 제약 조건 가운데 농공진흥책과 국제적 통상 등이 강조된 점도 인상적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전환기 한국종교의 존재양상은 유교,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 변화 가운데 천주교, 개 신교와 같은 외래종교의 수용과 확산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근대시기 각 개별적인 한국 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존재양상 및 그 윤리적 특 징과 차이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이 시기 ‘한국신종교’의 ‘시민’과 ‘세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구체적 논증 역시 과제이다 예컨대 근대전환기 야뢰 이돈화(1884~1950) 는 동학의 종교화 과정에서 교리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동학 천도교 사상가이다 특히 그의 ‘신앙성과 사회성’이라는 논설 가운데 독특한 ‘사회관’을 엿볼 수 있다.67) 또한 ‘신인철학’에서는 더 발전된 ‘사회관’ 이 피력되고 있기 때문이다.68) 뿐만 아니라 천도교의 ‘공개인(公個人)’과 ‘대아(大我)’는 물론 원불교 의 ‘사은사요(四恩四要)’와 ‘봉공인(奉公人)’을 통한 시민개념 등에 대한 67) 허수 지음, ꡔ이돈화 연구-종교와 사회의 경제ꡕ,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3, 역사비평사, 2011 아울러 이돈화, 「신앙성과 사회성(1) (2)」, ꡔ천도교월보ꡕ 98과 동, 「종교의 신앙과 사회의 규칙」, ꡔ천도교월보ꡕ 98 등이 참고로 된 다 68) 근대전환기 대표적인 사상가인 야뢰 이돈화(1884~1950)는 동학의 종교화 과정에서 교리를 철학적으로 정리한 동학 천도교 사상가이다 특히 그의 대표 저술인 에서 ‘사회관’을 엿볼 수 있는데, 이른바 ‘신사회’와 ‘개벽’이 바로 그것이다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13 정립과 ‘세계’ 인식과 관련한 천도교의 ‘세계주의’와 ‘세계공화’는 물론 ‘사해동포주의’, 대종교의 ‘애합종족’과 ‘천민동락(天民同樂)’과 원불교 의 ‘일원세계’와 ‘삼동윤리’ 등을 통해 그 구체성이 파악되고 그 가운데 ‘사회경제적 공공성’의 실천윤리 등에 대해 체계적인 정리가 병행되기 를 기대한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근대시기 한국종교와 관련하여 ‘사회·경제’ 개념의 형 성·유통과 관련하여 근래 학계에서 진행된 개념의 수용사를 토대로 당시 근대 한국종교가 새로운 공공영역의 출현 가운데 ‘종교의 사회경 제적 역할’을 어떻게 자각해나갔는지에 대해 기초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근대전환기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공공성’이 새롭게 탐색 되는 실마리가 찾아지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근대전환기 한국에서는 ‘사회와 경제’에 대한 개념 인식 이 시작되어 특히 1900년대를 넘어 1910년대에 이르면 ‘사회’에 대한 개념 인식은 국가의 활동으로서 ‘정치’ 이외 ‘경제’ 등 삶의 다양한 영 역에 투영된 양상으로 확장되어 가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1920년대에 이르면 한국 ‘사회’는 다양한 분화 경향을 표상하 고 그 분화된 조직들과 영역들을 종합하는 실재를 표상하는 개념으로 인식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중국의 5·4운동 이후의 ‘사회개 조’나 일본의 ‘사회집단’, ‘생활사실’ 등에서도 유사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1920년대에 이르면 ‘사회’라는 용어가 다양하게 분화된 조직들과 영역들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으로 분화 되면서 ’사회문제‘, 사회교육’, ‘사회교화’ 등의 합성어로 통용되기 시작 114 韓日民族問題硏究 한 것이다 특히 ‘시장의 메커니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경제문제’ 에 대한 인식 또한 공존했으며, 바로 그곳에 ‘사회경제적 공공성’이 자 리할 수 있는 틈새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측면에서 유교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 변화는 물론 천주교, 개신교와 같은 외래종교의 수용과 확산의 과정에 대한 검토 역시 중요한 것이었다 나아가 한국 ‘신종교’의 사회인식과 존재양상 및 유력 인사들의 통찰의 특징 등에 대한 검토도 더욱 심화 되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근대 한국종교는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고난 가운데 민중을 역사적 주체로 자각하며 ‘사회’ 개념을 받아들이고 정립 해 나왔다 특히 그 경우 ‘사회’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는 물론 ‘경제 사회’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한국신종교’의 경우, 예컨대 이 시기 천도교 등에서 제기하는 ‘사회윤리’라는 개념은 종교와 사회 간의 관계를 잘 명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심화연구 가운데 궁극적으로 근대 한국종교가 지향 하는 사회경제적 이념들, 특히 사회윤리와 시민윤리의 연계는 물론 현 대사회의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이정표’였음이 궁구되어야 할 것이다 즉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공공가치를 시민적 공공성으 로 재해석하며 시민윤리 나아가 세계시민윤리로 연계시키는 이론적 진전이 필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한국의 전통윤리와 가치 가운데 세계적 시민윤리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미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이를 토대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시민윤리의 재정립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근대 한국신종교’의 경우 천도교의 ‘공개인(公個人)’과 ‘대아(大我)’는 물론 원불교의 ‘사은사요(四恩四要)’와 ‘봉공인(奉公人)’ 을 통한 시민개념 등에 대한 검토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15 다 또한 ‘세계’ 인식과 관련한 천도교의 ‘세계주의’와 ‘세계공화’는 물 론 ‘사해동포주의’, 대종교의 ‘애합종족’과 ‘천민동락(天民同樂)’, 원불교 의 ‘일원세계’와 ‘삼동윤리’ 등을 통해 그 구체성이 파악되기를 기대한 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사회경제적 공공성’의 실천윤리 등이 체계적 으로 제기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전환기 동서양의 충돌과 교류 가운데 한국종교 역시 서양적 사회구성의 원리 및 학문적 체계에 관심을 확 대해 갔고, 특히 ‘사회’, ‘경제’ 등 새로운 개념들과 조우하는 과정이었 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개념의 형성은 역사적 특성과 밀접하 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 문화사상적 전통과의 연계성을 밝히는 것도 자연스럽게 과제로 대두된다 즉 ‘번역된 근대’의 관점이 아니라 ‘해석 된 근대’의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에 대한 개념의 변천과정을 분석하 는 개념사적 방법을 넘어서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근대 한국의 개별종 교가 근대적 시민형성, 세계시민주의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또한 그 과정에서 ‘나침반’과 같은 사회경제적 공공성의 가치가 추출되는 성과 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 참고문헌 김권정, ꡔ근대전환기 한국사회와 기독교 수용ꡕ, 북코리아, 2016 김현주, ꡔ사회의 발견ꡕ, 소명출판, 2013 류대영, ꡔ초기 미국선교사 연구ꡕ,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 오상준 지음, 정혜정 역해, ꡔ동학 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오산준의 ‘초등교서’ 다시읽기ꡕ,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9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근대 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ꡕ, 모시는사람 116 韓日民族問題硏究 들, 2018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근대 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ꡕ, 모시는 사람 들, 2019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ꡔ개벽운동을 다시 읽다ꡕ, 모시는사람들, 2020 柳炳德 著, ꡔ鷄龍山下 宗敎集團體와 母岳山下 宗敎集團體의 比較硏究ꡕ, 이리: 圓 光大學, 1968 유영렬·윤정란, ꡔ19세기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 The Korean Repository를 중 심으로ꡕ, 경인문화사, 2004 이돈화, ꡔ新人哲學ꡕ, 천도교중앙총부, 1968 조성환, ꡔ한국 근대의 탄생ꡕ, 모시는 사람들, 2018 허수, ꡔ이돈화 연구-종교와 사회의 경제ꡕ,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3, 역사비평사, 2011 강인철, 「한국사회와 종교권력-비교역사학적 접근」, ꡔ역사비평ꡕ 77, 2006 김민영, 「식민지시대 한국 ‘신종교’ 단체의 동향과 특징 : ꡔ朝鮮の類似宗敎ꡕ(村山 智順, 1935)의 재검토를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연 구ꡕ 34, 2017 김민영, 「1910년대 전후 전남 영광지역의 종교지형과 민족사회·경제운동」, 한 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연구ꡕ 36, 2018 김민영, 「1920·30년대 물산장려운동의 경과와 종교계」,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 일민족문제연구ꡕ 38, 2019 김종석, 「19·20세기 초 영남 퇴계학파의 사상적 대응에 관한 철학적 고찰 : 신 사조 수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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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근대 한국의 ‘종교’ 인식-개화파와 개벽파를 중심으로」, ꡔ종교문화연 구ꡕ 32, 2019 ■ 제 출 일: 2020 20 ■ 심사완료일: 2020 31 ■ 게재확정일: 2020 10 118 韓日民族問題硏究 ■ 주제어(Key Words): 근대 한국종교(the modern Korean religion), ‘사 회·경제’ 인식(perceptions of the society & economy), 공공성 (public concern), 사회경제적 공공성(social and economic public concern), 사회경제적 역할(social and economic role)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19 Perceptions of the ‘Society & Economy’ and Public Concern of the Modern Korean Religion Kim, Min-Young History could be said as the process of accepting and transforming civilization Korean traditional society also has gone through the course of resistance, acceptance and transformation in contact with modern civilization Moreover religious thought in modern Korea was in the process of such challenge and response In this regard, it could be meaningful recently as cohort study of re-building ‘public concern of modern Korean religion’ has been conducted for the medium and long term As is well known, the religions in modern Korea was lying amid the era of political and social plight as oppressive monarchy and aggressive foreign rule in late Joseon Along the way it would be basically the first step of this study to review how the religion in modern Korea accepted and established the notion of ‘society’ while realizing the people as historic subject And in this context, ‘society’ shall be accepted as including market economy (economic society) as well as state(political society) and civil society Furthermore we need to focus on individual efforts and practices of each religion for ‘social and economic public concern’ based on so-called ‘public good’ including the value of the era, personal responsibility, and social 120 韓日民族問題硏究 justice in the middle of social economy situation of Japanese rule Accordingly we could start with a critical mind of bridging the gap in study about how ‘society and economy’ notion in Korean society of turning point of modern age was created and distributed as a part of premise process I reviewed even more about how the religion of modern Korea realized ‘social and economic role in religion’ amid appearance of new public area based on the history of acceptance in terms of the notion I wish to discover a new clue of searching ‘social and economic public concern’ of Korea’s religion in the turning point of modern ages through this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21 近代, 韓国宗教の‘社会·経済’の受け入れと公共性 金旻榮 歴史は文明の受入と変容の過程と言える。かつて韓国社会も近代文明に触 れ、反発と受入そして変容の過程を辿った。また、韓国の近代宗教思想もその ような挑戦と応戦の過程の真っ最中だった。 このような側面から考えると、このごろ「韓国の近代宗教における公共性」を再 構築しようとする中長期的な集団研究が行っているが、これが表す意味は非常 に大きい。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韓国の近代宗教は、朝鮮時代の後期に は、王政の暴圧や侵略してくる外敵という政治的かつ社会的に苦しい時期に置 かれていた。 その中で、民衆が歴史の主体であることを宗教が自覚し、「社会」の概念を どのように受け入れて定義して来たのかについて分析していくことは、そのような作 業の基礎となる第一歩だろう。また、「社会」というのを、国(政治社会)と市民 社会だけではなく、市場経済(経済社会)まで含むものとして理解しなければなら ない。さらに、植民地時代という社会経済の状況のなかで、その時代の価 値、個人の責任、社会の定義を含む、いわゆる「共同善」をベースにした「社 会経済的公共性」に対する各宗教別の取組などについても注目すべきである。 したがって、ここではその前提の一つとして、近代転換期の韓国社会におい て「社会·経済」の概念がどのように形成·流通されたかについて、研究史の 空白を埋めるという問題意識からスタートする。また、その概念を受け入れた歴 122 韓日民族問題硏究 史をベースに、当時の韓国に近代宗教が新しい公共領域の出現時に「宗教の 社会経済的役割」に対してどのように目覚めてたか、それについて考えてみた。 それを通じて、近代転換期における韓国宗教の「社会経済的公共性」を模索す る、新たな糸口の発見につなが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 ... 네트워크간의 접속과 교류가 나타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 다.33) 향후 이를 포함한 ‘사회경제적 공공성? ??의 실증에 대한 천착이 더 진행되기를 기대한다.34) Ⅲ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적 인식의 특성 그렇다면 근대? ??환기 한국종교는 ‘사회’와 ‘경제’ 개념을 어떻게 인 식해 왔을까 또한 그 가운데 한국의... 1994 ; 이명호, ? ?근대? ??환기 종교영역의 변화와 사회인 식」, 451쪽 49) 이명호, ? ?근대? ??환기 종교영역의 변화와 사회인식」, 453쪽 50) 이명호, ? ?근대? ??환기 종교영역의 변화와 사회인식」, 454쪽 51) 이명호, ? ?근대? ??환기 종교영역의 변화와 사회인식」, 455쪽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107 잘 알려져... 1968 참고 8) 원불교사상연구원, ? ?근대? ??국 개벽종교를 실천하다ꡕ, 2019.2 9) 김민영, 「1920·30년대 물산장려운동의 경과와 종교계」, 한일민족문제학회, ꡔ한일민족문제연구ꡕ 36, 5~37쪽, 2019 근대 한국종교의 ‘사회·경제’ 인식과 공공성 93 를 기대한다.10) 잘 알려져 있듯이 근대 한국종교는 조선 후기 폭압적 왕정과